[오금아의 그림책방] 벽 그리고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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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부장

벽이 있다. 농장의 벽은 농장 안 동물과 농작물을 지켜준다. 스포츠 경기에서 공이 튀어 나가지 않기 위해서도, 멋진 그림을 걸기 위해서도 벽은 필요하다. 집도 벽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의 집에도 생쥐의 집에도 공평하게 네 개의 벽이 필요하다.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있어서 도움이 되는 벽이다. 존재하지 않으면 좋을 벽도 있다. 생각, 신분, 성별, 종교, 나라가 다른 사람을 갈라놓는 벽이다. 아파트 일반·임대 단지 사이의 벽, 미국의 이민 장벽 등이 떠오른다. 차별과 편견으로 쌓은 배타적인 벽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 벽들은 험악하고 무례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게 한다. 친구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게 한다.

브래드 홀드그래퍼와 제이 커버가 쓰고 그린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요!>는 “여기 벽이 있어. 우리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이라고 소리치라고 말한다. 다름을 이유로 벽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크게 외치는 일. 거기에서 시작한다. 벽의 존재를 알고, 그것의 부당함을 알고, 벽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알게 된다.

틈이 보인다.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일도 작은 틈에서 시작한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작은 틈 이야기>는 서로 다른 틈을 보여준다. 친구끼리 투닥거리며 틈이 생긴다. 여기에 기분을 상하게 하는 미운 말, 누군가를 탓하는 나쁜 말이 들어가면 틈은 점점 벌어진다. 틈이 커지면 친구 사이도 멀어진다. 틈은 자꾸 커져서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같은 크기의 틈에 친절하고 따뜻한 말을 부어 넣으면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 틈 사이로 응원과 배려가 오가고, 틈을 통해 다른 세상에 손을 뻗게 된다(그림).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다 보면 어느새 틈은 커다란 구멍이 되어 있다. 절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벽도 우정의 씨앗이 뿌리 내린 틈 앞에서는 버틸 수 없다.

두 권의 그림책은 벽과 틈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보여준다. 필요하지 않는 벽을 없애는 것도, 벌어진 틈 속에 ‘이해의 나무’를 키우는 것도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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