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금속 기둥이 불러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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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2020년 한 해가 ‘순삭’(순식간에 삭제됨을 뜻하는 신조어)될 즈음 재미있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달 18일 미국 서부 유타주 사막에 높이 3.6m에 달하는 금속 삼각 기둥이 발견된 것이다.

사막에서 처음 발견됐을 당시 바닥에 고정돼 있었던 금속 기둥은 주변에 발자국이나 자동차 바퀴 자국이 남아 있지 않아 SNS를 중심으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누군가 설치해 둔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SF 애호가이자 조각가였던 존 매크래컨(2011년 작고)을 유력 후보로 꼽았다. 인터넷 매체 씨넷은 SF 드라마 촬영 시기를 근거로 촬영용 구조물이 미처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설왕설래 속에서 기둥은 9일 만에 미스터리하게 왔다가 미스터리하게 떠났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법했던 정체 모를 금속 기둥이 지속적으로 뉴스에 오르내린 건 한 번의 등장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금속 기둥은 지난달 26일 루마니아의 고고학적 명소인 페트로다바 다치안숲 언덕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뿐만 아니다. 이달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타스타데로 스타디움공원 내 파인산 정상에 이어 4일 라스베이거스 프리몬트 길거리 체험 구역, 5일 캘리포니아 로스 파드리스 국립공원에서 정체불명의 금속 기둥이 잇따라 발견됐다 사라졌다. 6일에는 영국 남부 와이트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금속 기둥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자 홍보용 작품도 등장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한 사탕가게는 코로나19로 타격받은 소상공인을 응원하자는 뜻에서 가게 앞에 기둥을 설치했다.

평소라면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을지 모를 금속 기둥. 하지만 ‘코로나19 말고 다른 얘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실, 코로나19를 빼놓고 올해를 떠올려 보면 이미지가 퍼뜩 그려지지 않는다. 2020년은 그야말로 ‘코로나19가 잠식해버린 해’였다. 금속 기둥이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건, 어쩌면 코로나19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세계인들의 바람이 금속 기둥에 모인 덕분이리라.

내년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백신 접종 중인 영국조차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을 잡지 못해 봉쇄를 강화하는 걸 보면 ‘코로나19 없는 2021년’이 쉬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로 코로나19의 해였던 올해보다는 나을 거라 믿어본다. 금속 기둥을 시작으로 재미있는 뉴스가 차고 넘치길 고대하면서.

윤여진 국제팀장 onl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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