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현장 실습생·청년 노동자의 삶’ 생생하게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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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허태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존재를 증명받을 수 있었다. 대학생, 군인, 직장인, 사회 초년생이라는 말 안에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의 서사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일하는 청(소)년, 대학생이 아닌 이십대, 군인이 아닌 군 복무자였던 나는,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채 경계 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는 이런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저자가 공장에서 청년 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 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 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3년 7개월간 근무했다. 저자는 그 시절 자신에게 명확한 이름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지역 중소기업서 3년여간 근무 경험
공장 노동자 내밀한 속마음 풀어내

청년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2017년 제주 현장 실습생 사망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야 그들의 삶은 겨우 신문과 방송 뉴스에 파편화되어 흩어지는 정보로 남았다. 저자는 이런 사회 현실 속에서 독백처럼 외친다.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를 돌려주고 싶었다. 당신과 내가 함께 지나왔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이는 저자가 내밀한 속마음을 세상에 꺼내놓은 궁극적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올해는 스물두 살의 나이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우리의 현실은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고작 열여덟, 열아홉 살 나이의 청년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몰고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도 ‘나 몰라라’하는 기성세대들의 모습은 별로 달라진 바 없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건,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에 관한 관심은 조금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현장 실습생과 청년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는 비교적 적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 그중 하나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고귀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다. 저자는 자신이 당했던 부조리, 억울함, 서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특정인을 저격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신 혹은 주위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며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끊임없이 서로를 구분 짓고 경계하기보다는, 유사한 형태의 폭력과 상처를 서로 보듬어나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허태준 지음/호밀밭/272쪽/1만 4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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