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 왜 군주국 옹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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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꿈/곽차섭

서양사학자 곽차섭 부산대 교수가 낸 <마키아벨리의 꿈>은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30년간 마키아벨리 전공자인 저자의 식견이 녹아 있으며, 특히 마키아벨리(1469~1527)가 공화주의자였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 통상적으로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냉혹한 정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의 주창자다. 그런 그가 공화주의자였다니!

저자가 보기에 마키아벨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용되는 사상가다. 그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악명 높은 권모술수의 주창자이면서 열렬한 공화주의자라는 매우 상반된 면모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시대는 파란만장했다. 피렌체 정치 체제가 메디치가(家)의 귀족정과, 시민 공화정을 오가던 굴곡의 시대였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가 축출된 후 들어선 시민 공화정에서 2인자로 10여 년 봉직했다. 그래서 다시 메디치가가 복귀했을 땐 죽음 직전의 고문까지 당하는 감옥 생활을 했다. 다행히 4~5개월 감옥 생활을 한 뒤 풀려나와 메디치가에게 자신을 잘 봐달라고 바쳤던 책이 저 유명한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는 영판 기회주의자, 친(親)메디치적인 변절자였다. 과연 ‘현실 세계에서는 악덕도 미덕이 될 수 있다’ ‘잔혹함과 술책을 사용하는 것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는 <군주론>의 문장은 마키아벨리즘의 정수를 토한다.

역사 속 끊임없이 변용되는 사상가
‘실효적 진실’ 신봉 철저한 현실주의자
악명 높은 ‘권모술수 주창자’였지만
‘국가 헌신’ 최고선 여겨 ‘군주론’ 펴내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실효적 진실’을 신봉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고 말한다. 즉 메디치가(家) 군주의 입지를 세워줘야 하는 현실을 전면 수긍했다는 거다. 그러나 속마음으로는 피렌체 공화주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 본심은 공화주의자라는 거다. 실제 <군주론>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획득한 군주국’보다 ‘시민 동의에 의한 군주국’이 돼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말한다는 것이다.

왜 공화주의자가 군주국을 옹호했는가. 마키아벨리는 “나는 내 조국을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한다”며 국가에 대한 헌신을 최고선으로 여겼다는 거다. 그게 고대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 이상을 신봉한 공화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면모였다는 거다. 실제 그의 <리비우스 논고>는 <군주론>의 대척점에서 시민공동체, 독립과 자치, 공화주의를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아테네와 로마가 위대한 것은 개별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 공화국이었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20세기 후반 30년간 미국에서 유명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 건국이념은 로크적 자유주의라기보다는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였다는, 정치학자 포칵의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던 거다. 권모술수의 화신을 미국 건국이념에 갖다 붙인다며 긴 논쟁의 불이 붙었다. 결론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와 로크적 자유주의, 모두 미국 건국이념이라는 것으로 귀결됐다. 그때 제시된 개념이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였다. 서양사에서 공화주의 정신이 발현된 역사적 계기가 15~16세기 이탈리아, 17세기 중엽 잉글랜드, 18세기 중엽 건국기의 미국이었다는 게 그것이다.

실상 마키아벨리를 공화주의자로 보는 시각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시기에 널리 확산됐다고 한다. 백과전서파 디드로, 계몽사상의 거장 루소는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전제정을 증오했다”며 마키아벨리를 심오한 천재이자 훌륭한 시민으로 추켜세웠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과 피히테도 후발 독일의 국가적 이상을 고무하는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를 최고 사상가로 등극시켰다. 심지어 20세기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그람시도 마키아벨리에게서 혁명의 잠재력을 발견해낸다. 이런 데서 우리는 마키아벨리는 끊임없이 얘기되면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사상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마키아벨리의 철저한 현실주의는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인간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거기서 공화주의도 도출될 수 있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몰락 이후 개인 이익을 탐욕스럽게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너무 기세를 부리고 있다. 그 대안으로 다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화주의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며 정권을 갈아치운 촛불혁명 때 한국에서도 공화주의가 부상했다.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는 지금 다시 새롭게 해석될 수 있고,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현재적 사상가다. 한편 곽 교수는 <부산일보> 등에 썼던 인문 단평과 서평 80편을 모은 <갈릴레오의 망각, 혹은 책에 관한 기억>도 출간했다. 곽차섭 지음/도서출판 길/338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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