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동산 거품, 공포와 탐욕 무능이 낳은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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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국 디지털미디어부장

갑작스러운 집값 폭등으로 온 국민이 ‘부동산 블루’를 앓고 있다. 무주택자는 폭등한 임대료에 전·월세 난민으로 전락, ‘벼락 거지’가 됐다. 수입과 재산이 비슷했던 사람이 집을 샀느냐 안 샀느냐에 따라 갑자기 자산 규모 차이가 수억 원 씩 벌어졌다. 청년 세대의 박탈감은 더 심하다. 정직하게 일하고 저축해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집 한 채 가진 사람도 불만이다. 자산 가치 상승분을 현금화할 수도 없는 처지인데 세금과 건강보험료만 급등했다고 울상이다. 극소수 투기 세력을 빼고는 집값 폭등으로 행복한 사람이 없다.

올라도 너무 오른 부동산 가격
온 국민 너도나도 ‘부동산 블루’
수요 억제·규제 중심 정책 약발 다해
설상가상 ‘임대차 3법’ 성급한 적용
시장의 ‘공포와 탐욕’에 기름 부어
투기 자금 차별적 금리 적용 고려를



취임 후 요지부동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 미끄러지고 있는 것도 ‘부동산 정책 실패’가 첫 손가락에 꼽히는 원인이다. 놀란 정부는 집값이 오르는 곳마다 규제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투기꾼의 발걸음은 정부 대책보다 항상 빨랐다. 풍선효과가 대구 부산 창원까지 돌고 돌아 다시 서울에 상륙했다고 한다.

앞으로 집값은 더 오를 전망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내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2%, 전세는 4%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금융연구소도 내년 주택매매가격이 1.04%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막대한 재정투입과 저금리 대출로 시중 유동자금이 풍부해진 까닭이다. 투자처를 잃은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면서 자산 가치만 폭등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산 가치와 실물 경제의 괴리가 너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부진으로 국민들의 소득은 줄고, 기업의 매출도 제자리걸음인데 자산 가격만 급등했다. ‘버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산 가격 버블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 또, 자산 버블은 필연적으로 붕괴돼 위기를 초래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1930년 세계 대공황까지 갈 것도 없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1997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2004년 미국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촉발한 세계금융위기 등이 빼도 박도 못하는 증좌다.

사실, 금융이든 부동산이든 시장경제 체제에서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는 경기 변동 사이클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 상태가 과도하게 민감해져 ‘탐욕’과 ‘공포’로 발전해 변동성이 급격하게 커질 때 발생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 흐름은 이를 웅변한다. 공급 부족과 수요 증가로 촉발된 상승장에서, 일부 시장 참여자들의 탐욕이 기름을 끼얹었다. 투기성 자금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이 때 아니면 내집 마련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너도나도 추격 매수에 나서면서 거품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시장 참여자들을 진정시키는 데 실패한 정부의 무능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이 정부 들어 두 달에 한 번 꼴로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과장을 좀 보태자면 북한을 제외한 전 지역을 조정지역으로 묶을 기세를 보였지만 정책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되레 올 7월 당·정이 급하게 밀어붙인 ‘임대차 3법’마저 주택시장을 다시 요동시켜 버렸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경기 하강 국면에서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왔지만, 경기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 까지는 1~2년 정도 걸릴 거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과도한 대출을 견디지 못한 주택 소유자들이 행여 겁에 질려 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동산 시장은 경착륙할 가능성이 높다. 자산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소비 경련을 일으켜 전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과잉 상승장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정부가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심리적 과민함을 진정시키려면 정책 기조의 변화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1970년대 경제학에 일대 혁명을 몰고 온 로버트 루카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경제주체들은 활용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상황 변화를 합리적으로 예측하는데, 예상 가능한 정부의 금융·재정 정책은 무력화 된다”는 ‘합리적 기대이론’을 내놓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규제와 세금을 앞세워 수요 억제해 왔던 정부 정책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수가 다 읽혀 먹혀들기 힘들다. 지속적인 주택 공급 신호를 발산하고, 투기적 성격의 주택 구매용 대출을 구별해 선별적 금리 인상을 시도하는 등 새롭고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말로 공포와 탐욕 무능이 만들 파멸의 변주곡을 멈춰야 할 시점이다.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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