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 나지만 혐의 인정” 오거돈 한마디에 허 찔린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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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 혐의’ 오, 또 구속 면한 이유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 18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기하던 부산 사상구 부산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김성현 기자 kksh@

부하 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구속영장이 또다시 기각됐다. 올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검찰은 강제추행 혐의에다 형량이 높은 강제추행 치상 혐의를 추가했지만 “기억은 안 난다. 혐의는 인정한다”는 오 전 시장의 태도에 허를 찔린 모양새가 됐다.

일단 검찰은 법원의 불구속 사유를 검토해 향후 수사 방향을 결정한 뒤 법정에서 오 전 시장의 유죄 입증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피해여성 말이 맞다” 혐의 대부분 인정
구속 피하기 전략에 檢 연거푸 체면 구겨
부산지법 “사실관계 별다른 다툼 없어”
두 차례 기각으로 불구속 기소에 무게


■오 전 시장 “기억 안 나지만 혐의 인정”

부산지법은 지난 18일 오 전 시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의 기각 결정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끝난 지 6시간 만인 이날 오후 6시 30분께 나왔다. 부산지법 형사2단독 김경진 부장판사는 “사실관계에는 별다른 다툼이 없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크지 않아 구속의 상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등 피의 사실에 대해서는 “피의자(오 전 시장)의 지위와 피해자들과의 관계, 영장청구서에 적시된 언동을 고려하면 피의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은 크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은 1시간가량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 오 전 시장 측 최인석 변호사는 “본인은 정확하게 당시 상황이 기억 안 난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그렇게 말하면 인정하겠다. 상대방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말이 다 맞다”며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이날 법원은 사실관계에는 별다른 다툼이 없고, 증거 인멸 우려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 상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 전 시장은 6월 2일 열린 첫 번째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전 시장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한 것이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 3개 혐의 추가해 영장 청구

검찰은 오 전 시장에 대한 두 번째 사전구속영장 청구서에 불법 행위 2건에 대해 4개 혐의를 적시했다. 올 4월 집무실 내 직원 강제추행과 △2018년 일어난 또 다른 직원 강제추행 △강제추행 치상 △강제추행 미수 △무고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첫 구속영장 청구 당시 적용했던 강제추행 혐의에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더했다. 검찰은 피해자가 강제추행을 당한 당일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사건 이후에도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제추행 미수와 무고는 오 전 시장의 또 다른 강제추행 범죄와 관련된다. 검찰은 오 전 시장이 2018년 또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 강제추행을 시도한 정황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강제추행 미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고 혐의는 지난해 10월 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이 추가 성범죄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자 오 전 시장이 채널 운영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따른 것이다.



■검찰, 영장 재청구할까?

검찰은 오 전 시장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또 다른 강제추행 혐의 증거와 강제추행 치상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검찰로서는 혼란이 불가피하다.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직 징계로 수사 지휘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추가 구속영장 청구 여부와 수사 방향 설정도 어려운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세 번째 구속영장 청구에 나설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전관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로서는 오 전 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이어 기각된 것은 타격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검찰이 추가 구속영장 청구보다는 불구속 기소 뒤 법정에서 유죄 입증과 법정 구속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부산 한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재판부가 강제추행 등 유죄 혐의에 대해 상당 부분 인정했다”며 “검찰이 혐의의 심각성을 부각할 증거를 뒷받침해 오 전 시장 구속을 다시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오 전 시장의 구속 수사와 처벌을 촉구해 온 오거돈 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영장 기각 소식에 즉각 반발했다. 대책위는 “법원은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인 오거돈을 일벌백계해 사회에 경종을 울려도 모자랄 판국에 또 풀어줬다”며 “우리 사회의 정의가 가해자의 권력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참담함을 넘어 모멸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권상국·김한수·김성현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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