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에브리싱 체인지]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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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12월 동짓날마저 지났다. 바다에 나가 해를 보고 소망을 빌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한 해다.

호모사피엔스의 생존사에 있어서 불안과 상처가 이토록 광범하고 심했던 적이 있을까 싶다. 새해가 되면 항상 떠오르는 해를 보며 저마다의 기원을 빌어 왔는데, 올해에는 인류가 소망하는 것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불안과 무기력의 세월이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불안했던 한 해
그래도 스스로 주인이고 싶은 인간
삶의 목표와 방식 멈춰서 돌아보고
개인 의식 고양으로 충격 해소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얼마 안 있어 있을 새해 첫날에 해를 보러 나가야 할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어느 영화 속의 대사처럼, 세월이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휩쓸려 가는데 무엇을 소망하려고 바다까지 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세월 속에서도 자신의 삶에 주인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하소연도 반복하면 진부해진다. 자칫 황망감이 더할 수도 있는 연말연시에 흙탕물 급류 속의 부유 물질이 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전환점’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이 용어는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가 사용한 단어였다. 보통 전환점 용어는 반환점과 같은 뜻이다.

하지만 하워드 교수가 말하는 전환점은 돌아오는 지점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냥 멈춰 서서 생각하는 지점을 말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34년 혹은 52년 막무가내로 쫓기듯 사는 삶을 멈추는 시점을 말한다. 정확히는 삶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삶의 목표와 방식을 멈추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때로 의도치 않게 실수도 하고, 때로는 그 덕분에 기회비용을 적잖게 지불하며 살기도 한다. 월급쟁이, 자영업자, 아내, 자식, 부모 노릇 하느라, 혹은 편견 많은 세상에서 비혼자나 구직자로 살아낸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 고되게 살아온 삶의 유형을 멈추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서 갖는 생각의 시간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길을 계속 걸을지, 되돌아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생각의 출발점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리는 것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매일 아침마다 가슴 뛰는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필시 심장병에 걸릴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가슴 뛰지 않는 사람 또한 정상일 수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되는 나만의 인생 종목은 무엇일까? 현재 내가 하는 일은 그것에 얼마나 ‘사회적 거리 두기’ 상태로 있어 온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자.

무엇이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생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를 발견한다. 가족의 논리, 직장의 논리, 돈의 논리에 종이 된 사람들이다. 아예 운에 자신을 던져 버린 ‘노예’들도 많다.

전환점은 이런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는 모든 안정적인 것들을 해체한다. 크게는 번듯했던 국제기구가 무용해지는가 하면, 생산·소비 방식도 깨어지고 있다.

생활양식도 으깨어진다. 결혼은 선택이지만 고양이나 개에게 엄마, 아빠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현대인들이 방황하고 절규하는 것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던 가족, 직장, 마을이 깨어지면서 개인이 모든 외부 충격을 직접 감내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의식이 고양되지 않으면 인생 내내 충격이다. 전환점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래서 운명이다. 급류의 흙탕물 같은 시절을 사는 것도 운명이다. 이 운명의 시간에,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턱 빠지게 웃고, 때로는 험악한 얼굴을 하고 길을 나서는 나는 누구인가? 누구이고 싶은 것인가?

피터 드러커가 항상 말하던 바, 나는 과연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 인물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청춘의 어떤 시기, 고향을 떠나올 때 바라보던 도시의 모습은 웅장했다. 꿈도 야무졌다. 그러나 이제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다짐조차 못 하는 세월이다.

송년회가 없는 밤. 사람들과 비대면하는 밤. 자신과 대면하기 좋은 ‘방콕’의 시간. ‘전환점’의 용어가 그대에게 귀한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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