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86. 용기가 ‘요구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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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받아야 될 것이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해지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 실린 뜻풀이인데, 어떤 낱말을 설명하는지 맞혀 보시라. 아마, 알아챌 독자는 채 10%도 되지 않을 터. 하지만 저 뜻풀이가 워낙 배배 꼬여서 그런 것이니 자책하실 것까진 없다. 이 설명이 뭘 가리키는지 독자들을 위해 빨리 밝히자면, 이렇다.

*요구되다(要求--): 받아야 될 것이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해지다.(젊은 세대에게 요구되는 정신/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는 항상 진취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된다./삶이란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고 편안함보다는 수고로움이 더 자주 요구되는, 어둡고 혹독한 그 무엇이라는 게 벌써 오래전부터의 짐작이었다.<이문열, 변경>)

이러면, ‘요구되다’라는 말보다 뜻풀이가 되레 더 어려운 셈이랄까. 표준사전 뜻풀이가 저리 배배 꼬인 건, ‘요구되다’가 우리말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실례를 보자.

‘재선충병이 소나무뿐만 아니라 잣나무에도 발생해 잣나무 고사목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간단한 요리일수록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노하우가 요구된다.’

여기 나온 ‘관심이 요구된다/노하우가 요구된다’는 우리가 입말로는 전혀 쓰지 않는 표현이다. 대체 누가 “관심이 요구돼?” “노하우가 요구돼!”라고 말하겠는가. 우리말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아주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즉, ‘주다, 보다, 때리다, 요구하다’와 대칭하는 말은 ‘받다(얻다), 보이다, 맞다, 요구받다’다. 그래서 ‘주어지다, 보여지다, 맞음을 당하다, 요구되다’ 같이 어색하고 어설픈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이처럼 상대어끼리 대칭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영어투나 일어투의 어색한 피동꼴을 쓰지 않아도 된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우리말을 쓰면서 그렇게 길을 잡았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게 우리말답다.

*주의가 요구된다→주의가 필요하다→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요구되다’는 ‘필요하다’로 바꾸면 충분하다. 주체를 강조하려면 ‘주의해야 한다’고 하면 된다. ‘신중해야 한다’면 짧고 힘도 있는데 무엇 때문에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쓰겠는가.(이 ‘요구되다’는 영어 ‘be required of’를 번역한 꼴인데, 일본어에도 ‘요구당하다(ようきゅうされる)’라는 표현이 있다.) 만약 지금처럼 이상한 피동꼴이 활개를 치면 나중에는 ‘때리다’의 대칭어로 ‘맞다’가 아니라 ‘때림을 당하다’가 쓰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피동 표현을 적극적으로 줄여야 할 이유다. 참고로,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민중서림, 2005년)에는 아예 ‘요구되다’가 올라 있지 않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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