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고 시려야 어디든 다다른다, 구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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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는 시인의 말에 “내 눈 가장자리로 지금 무엇인가 휘익 지나갔다”고 적었는데 사진에 그 ‘무엇’이 스치는 흔적이 보인다. 김홍희 제공

강은교의 시를 읽는 창은 ‘바리데기’다. 우리 신화에서 ‘바리, 데기’는 ‘버려진, 아이’란 뜻이다. 그는 바리데기를 ‘가장 일찍 버려진 자, 가장 깊이 잊힌 자’라고 쓴 적이 있다. 버려졌다는 건 우리가 삶과 시대의 고통·고난 속에 내팽개쳐져 있다는 말이다. 강은교의 경우, 함경남도 출생으로 월남해 겪었던 타향의 이방인 체험, 험악한 1970~80년대 이념시대를 관통하며 치른 신산함, 허무를 견뎌내야 하는 삶의 막막함,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사회 가부장제 억압에 짓눌린 여성 체험을 그 ‘버려짐의 목록’으로 말할 수 있을 거다.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강은교 6년 만에 14번째 시집
시련을 승화시킨 무가 같은 노래들
사계절 4부로 나눠 73편 실어

최근 6년 만에 열네 번째 시집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창비)를 낸 그는 ‘당기마기고모’를 불러낸다. “‘당기마기’는 삼신할미가 된 ‘당금애기’입니다.” 당금애기는 인간으로 태어나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삼형제를 키워낸 인고를 인정받아 삼신할미가 되는데 수많은 여성들의 지킴이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아프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아픔·시련속으로 뛰어들어 그것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리데기와 당기마기고모요, 한국적 여성성이라는 거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처럼 그가 시를 통해 쓰고 있는 한국적 신화다.

‘잡풀을 뽑는다, 민주주의를 생각한다/안 뽑히려는 그것들을 삽으로 흙에서 끌어내며/사투를 벌이는 그것들을 호미로 찍어내며//어느새 황혼, 피들이 낭자한 꽃밭을 삽을 던지고 호미를 던지고 떠난다’(86~87쪽). 사별한 남편과 관통한 이념시대의 삽화들이 어른거리는 이 시는 그 시대를 진혼하면서 그가 이르러 있는 전원과 ‘황혼’을 내비치고 있다. 1945년생, 어느새 75세, 그는 “요즘 부산 집과 창녕 오두막을 오가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말한다.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내 뼈에 있는 그곳/만져도 만져도 또 만져지는/언제나 첨 보는,’(12쪽). 아득한 그곳,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이르기 위해 그의 노래는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사계절, 4부로 나눠 73편을 실었는데 무가(巫歌) 같은 노래가 이어진다. 그의 시는 이쪽과 저쪽, 삶과 죽음, 그때와 지금, 너와 나를 서로 이어주는 주술의 노래, 영매(靈媒)가 부른다는 무가 같다. 무가는 삶의 고통과 시련을 새로운 차원의 무엇으로 풀어가고 만드는 노래다. ‘누가 문을 두드리네, 어찌 찾으리이까 어찌 찾으리이까, 뼈마디도 서러워서 살마디도 서러워서, 두드리네 두드리네, 두 주먹 불끈 쥐고 두드리네//두드리네 꿈에 젖어 서러움에 젖어, 아야아 심장 소리에 젖어 젖어’(124쪽). 살과 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인데 사람의 삶과 몸뚱이는 서럽고 서럽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뼈마디도 서러워서 살마디도 서러워서’ 저쪽으로 난 문을 자꾸만 두드리는 것이다.

사람에게 살과 뼈는 관능으로 이끄는 지름길, 어쩌면 꽃 같은 것이다. ‘주사이다/주사이다/살과 뼈 주사이다/꽃으로 주사이다’(42쪽). 그러나 관능의 황홀, 목숨의 황홀이 있는 곳에 우리 삶의 어쩔 수 없는 시린 서러움이 있다. ‘어찌 찾으리이까 어찌 찾으리이까/뼈마디도 시려워서 살마디도 시려워서’(46쪽). 뼈마디와 살마디가 서럽고 시리다는 그것이 삶의 실체다. 찢어지고 아파야, 서럽고 시려야 우리는 어디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주술 같은 한 마디 주문을 건다.

‘구원을 기억할 것’(133쪽).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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