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떠받치고 위안과 희망 준 그대들은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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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시선] 2020 ‘코로나 영웅들’

올해 코로나 시대를 버텨 낸 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한 숨은 영웅들로부터 나왔다. 왼쪽부터 방탄소년단, 코로나 방역 현장의 종사자들, 손흥민 선수. 부산일보DB·연합뉴스

지독한 한 해였다. 최첨단의 시대, 21세기가 무색했다. 2020년 시작과 함께 타오른 코로나19의 불길은 1년 내내 기세등등했다. 인간의 오만에 내리친 죽비일 테다. 그래서 세밑이 유난히 우울하고 쓸쓸한가. 그렇지 않다. 코로나 시대를 온몸으로 떠받치며 희망과 위로를 안겨 준 우리 사회의 숨은 영웅,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있다. 그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따뜻한 마음의 불빛을 환히 밝힐 시간이다.


방역에 몸 던진 의료진·봉사자
비대면 시대 이끈 필수 노동자
세계 대중음악사 새로 쓴 BTS
손흥민과 펭수가 건넨 위로까지
올해의 영웅들 기억하며 감사를


■공동체를 떠받치는 사람들

대구에 집단감염이 발발했던 올해 3월을 기억한다. 전국에서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자원해서 몰려들었다. 열이 나고 기침하는 환자에게 서슴없이 다가섰다. 여름에는 찜통 같은 방호복을 견뎌 냈다. 오랫동안 장갑을 두른 손은 허물이 몇 번씩 벗겨졌다. 생사가 넘나드는 의료 현장에서 보여 준 묵묵한 헌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방역 일선의 의료인들은 하루도 변함없이 환자와 함께 격리된 채 꿋꿋이 병실을 지키고 있다. 이 시대의 진짜 영웅이다. 완치 후 퇴원이라는 기적이 저기서 나왔다.

의료 현장의 더 낮은 곳, 거기에는 더 많은 영웅들이 숨어 있다. 선별 진료소 검체 요원, 역학 조사관, 공항 검역관, 보건소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 담담한 고백이 눈물겹다. 하지만, 미지의 공포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 재난은 비대면 사회라는 전례 없는 풍경을 빚었다.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노동력이 있다. 돌봄 종사자, 택배기사, 배달 종사자, 환경미화원 같은 필수 노동자다.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렇기 때문에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특히, 수요가 급증하는 택배나 배달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수한 죽음들이 그 증거다. 필수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2020년 코로나 한국을 떠받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를 통해 보이는 것 너머를 쓰다듬어야 할 때다. 이들의 삶은 마땅히 기억돼야 한다. 그리고 합당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



■위로와 희망의 아이콘

코로나 현장 바깥에도 영웅들은 있다.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 BTS(방탄소년단)와 손흥민, 그리고 펭수를 빼놓을 수 없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대중문화와 스포츠 분야의 스타지만, 대중들이 이들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

BTS가 올해 거둔 혁명적 성취에 대해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달 30일 추가한 대기록 하나만 얘기하련다.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비영어권 노래가 빌보드 차트 데뷔와 함께 정상에 오른 것 자체가 전무한 일이다. BTS는 세계 대중음악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호랑이 등을 거침없이 올라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BTS의 진가는 세상을 향한 ‘위로와 희망’의 행보에 있다. “고통과 냉소가 가득한 시기에 친절, 연결, 포옹이라는 메시지에 충실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연예인’으로 BTS를 선정했다. 코로나 시대에 공감의 아이콘이라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상찬이다. BTS는 공감의 메시지를 음악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뮤지션이다. 2018년에 이은 올해 9월 UN 연설에서도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로 전 세계를 울렸다.

음악에 BTS가 있다면, 스포츠에 손흥민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중적 영웅이다. “무서운 속도로 창의적 공간을 만드는 그의 플레이는 현대 축구의 정점이다.” 세계 축구 전문가들이 평하건대, 지금은 ‘손’의 시대라는 것이다. 현재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 2위를 달리는 손흥민은 얼마 전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는 푸스카스 상까지 거머쥐었다. 외출이 제한된 ‘족쇄’의 시대에, 그의 활기 찬 플레이는 통렬한 위안이다. 온 국민이 그의 활약에 희로애락을 나눈다.

그리고 ‘펭수’가 있다. 남극 펭귄, EBS 방송국의 연습생 캐릭터. 11살 맞은 펭수의 인기는 대한민국 10대는 물론 2030세대, 40~50대까지 감염시켰다. 펭수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안다. 이게 두루두루 공감을 빚는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 말해 주니까, ‘힐링’이 된다. 그 웃음은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다. 말하자면 리얼리티 있는 소통이다. 아쉬운 곳 긁어 주고 빈 곳을 채워 주는 펭수를 우리 정치판이 배워야 한다. 펭수는 단연 올해의 또 다른 영웅이다.



■개인주의 넘어선 공동체의 감각

바이러스 재난이 불러온 비대면 사회는 개인주의를 강화한다. 당연히 ‘공동체의 감각’은 흔들린다. 공동체의 감각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서로 함께한다는 유대와 공감의 정서를 가리킨다. 인간은 같은 시공간에서 공통된 감각을 가짐으로써 사회적 존재임을 실감한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는 사회의 공통 감각을 갉아먹는다. 이게 코로나 자체보다 더 큰 위기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코로나 재난이 공동체 감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욱 환기시킨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는 힘들지만 개인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 우리 국민성이 코로나 확산 저지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런 공동체 감각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개인의 권리 강화로 나아간 유럽에 비해, 타인을 배려하고 전체를 생각하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경험이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공동체의 감각이 어느 나라보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내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 서양 근대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신랄한 고발은 인간의 이기성을 향해 있다. 미움이나 증오, 공격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점도 있지만,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선천적이라는 주장도 밀리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이 사랑이냐 미움이냐는 식의 이분법은 무의미하다. 인간의 본능을 강화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결국 문화와 환경이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 시대 앞에서 우리의 숨은 영웅들이 보여 준 것은 인간의 담대한 이타성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대단한 걸작인가.” 햄릿의 입을 빌린 셰익스피어의 통찰처럼, 그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다.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각계각층에서 이름 모를 이들의 기부와 성금, 봉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후원금, 착한 임대료, 감사의 손편지…. 드러난 미담 사례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영화 같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만 영웅이고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영웅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돼 있다. 내가 아닌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짜 영웅이고 주인공이다. 그 따뜻한 불빛이 새해 아침을 또다시 환히 밝힐 것이다.

김건수 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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