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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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집에 오래 아픈 가족이 있다는 건 가족들 모두가 힘든 일이다. ‘경만’은 여동생과 번갈아 가며 아버지를 병간호 중이며,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한다. 병원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환자 옆 간이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병원비 재촉을 받고, 아버지의 재활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도 한쪽 귀퉁이에 서서 전화기를 붙들고 누군가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허리를 조아리는 경만. 그의 삶이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경만은 여동생 ‘경미’가 도착하자 늦게 왔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 쉬이 일터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착한 면모를 보인다. 남매의 숙련된 병원생활로 보아 아버지의 병과 병수발이 꽤 오래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아버지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애교도 부리는 등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는 마비된 입으로 경미를 향해 이미 ‘가장’인 경만을 잘 따르라며 당부의 말을 전하고 다음날 돌아가신다.

부천영화제 4관왕 오른 ‘잔칫날’
배우 김록경 감독 데뷔작 ‘호평’

아버지 장례식 비용 마련 위해
남 잔칫집 사회 보는 아이러니
죽음 둘러싼 풍경과 온기 담아


아버지가 갑자기 숨을 거두자 남매는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막막하기만 하다. 입관부터, 장례 음식, 제단 장식, 문상객은 얼마나 찾아올지 깜깜하기만 하고, 머리고기는 얼마짜리를 해야 하고, 수의는 무얼 선택해야 하는지, 장지는 또 무엇이고, 절을 몇 번 해야 하는 건지 배운 적도 가르쳐 주는 어른도 친한 친구 한 명도 주변에 없다. 당장 장례 치를 돈도 수중에 없다.

경만은 전국의 잔칫집을 찾아 행사 이벤트MC를 보는 직업을 가졌고, 경미는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지만 그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로 남매는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으며, 긴병 효자 없다는 말처럼 친척들도 하나둘 떠났을 테니 어디 가서 편하게 도움을 청할 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조용하던 행사 의뢰가 하필 아버지의 장례식날 들어왔다. 그것도 거금 200만 원짜리 팔순 잔치 행사 의뢰다.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벌기 위해, 아버지의 장례식을 지킬 수 없다. 눈물을 쏟고 싶을 만큼 슬픈 날이지만 거금의 행사 MC를 거절할 수 없기에, 경만은 눈물을 머금고 삼천포로 향한다. 그곳에는 남편을 잃은 후 웃음도 함께 잃은 팔순의 어머니를 웃게 해달라는 ‘일식’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최선을 다해 잔치에서 재롱도 피우고, 웃음을 짓던 경만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영화 ‘잔칫날’은 두 죽음을 둘러싼 기묘한 풍경을 보여준다. 한 죽음은 가장 행복한 순간의 죽음을 그린다면, 어떤 죽음은 돈이 없어 슬픔조차 애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해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두 죽음을 통해 요즘은 죽음까지도 돈으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경만의 아버지가 죽자, 병원 측에서는 상주에게 위로를 건네기보다 장례 절차에 드는 돈이 얼마인지 알려주며 그것이 마치 관례인 것처럼 굴고, 조의금으로 얼마가 적절한지 논의하는 친구들의 모습이나, 죽은 아버지가 빌려간 돈을 내어놓으라고 반 협박을 하는 사촌까지 이곳이 장례식인지 시장통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는 김록경의 장편 데뷔작 ‘잔칫날’은 고달픈 삶의 애환도 묻어나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도 함께 담아내고 있는 ‘착한 영화’다. 거기다 초상집과 잔칫집의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기막힌 모습이다. 영화는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배우상, 장편 관객상, 장편 배급지원상까지 4관왕을 수상했으며,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1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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