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호두까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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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안 돼 울면 안 돼.…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오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다. 이맘때면 남녀노소 누구라도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이 비슷하다. 이런 성탄 분위기에 연례행사처럼 기다려지는 크리스마스 공연이 발레 ‘호두까기인형’이다.

호두까기인형은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함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 1892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무려 128년간 크리스마스를 장식한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독일 작가 E T A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인형과 생쥐왕’이 원작인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소녀 클라라가 병정 모양의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은 뒤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마술의 힘으로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인형은 모두가 잠든 사이 생쥐군단과 결투를 벌여 물리친다. 클라라와 인형은 멋진 왕자와 숙녀로 변해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함께 춤을 춘다. 여행에서 돌아온 클라라는 인형을 꼭 껴안은 채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는다. 눈의 왈츠, 꽃의 왈츠 등 화려한 군무는 공연의 백미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가족을 중시하는 미국인 정서에 맞아떨어지면서 1954년 뉴욕시티발레단을 시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지난해까지 미국 발레단 연간 전체 수입의 20~40%를 차지했다. 호두까기인형은 어린 무용수의 발레 등용문이다. 또, 주역을 맡은 클라라는 각 발레단이 선보이는 차세대 스타 무용수이기도 하다.

128년 동안 열렸던 호두까기인형 발레 공연이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볼 수 없게 됐다. 한국의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의 공연이 모두 취소됐다. 뉴욕시티발레단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발레단 대부분도 무대를 취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의 악화에 따른 것이다. 부산에서도 2013년부터 호평을 받았던 김정순부산유니온발레단이 올해 공연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이브다. 오늘 밤 잠이 들면, 클라라의 꿈속처럼 카이저수염의 호두까기인형이 멋진 왕자님으로 변해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군단’을 무찌르는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만큼은 코로나에 주눅들어 미처 살피지 못했던 주변을 둘러보고, 전화로 안부라도 물어야겠다. 2021년 크리스마스에는 꼭 가족들과 손잡고 호두까기인형을 보는 소원을 빌어 본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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