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94. 프랭크 스텔라 ‘그리고는 물이 와서 불이 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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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미술작품을 마주할 때 의식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그 작품이 가진 의미를 찾는다. 그 해석의 의무를 떨쳐버리게 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20세기 미국 미술의 대표 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Philip Stella, 1936~)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작품 그 자체가 가지는 물리적 현존성을 강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평면에 물감을 칠하며 캔버스와 작가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흔적이 작품이 됐다.

프랭크 스텔라는 23세의 나이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16인의 미국 미술가들(Sixteen Americans)’전시에 참여한다. 33세에는 MOMA에서 최연소 작가로 회고전을 개최했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 스텔라가 남긴 이 말은 그의 예술관을 가장 잘 설명한다. 작품을 앞에 두었을 때,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이니 다른 의미나 상징을 찾고자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다. 작가가 뉴욕에 도착한 1950년대 후반 미국 미술은 추상화가 주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의 작품에서도 추상성이 주를 이루었다. 그의 초기 회화가 조형성을 강조하기 위해 단색조의 화면을 구성했다면 1970년대 후반, 80년대에 들어서는 알루미늄 판 등에 화려한 페인트를 입혀 만든 부조 형태의 회화를 제작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프랭크 스텔라의 ‘그리고는 물이 와서 불이 꺼지다’는 1973년에 제작된 부조 형태의 판화이다. 스텔라는 회화의 사물성을 강조하고자 ‘형태를 지닌 캔버스’ 연작을 제작했다. 화면의 형태만 보아도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재료도 자유롭다. 전통적인 유화물감 대신 벽을 칠하거나 자동차 등을 도색하는 에나멜 페인트를 사용하기도 했고, 종이를 덧대어 붙여 부조인 듯 평면 같은 회화를 제작했다. 가로·세로 140cm 가량의 큰 작품 앞에 서면 원색의 색채와 율동성이 주는 자극에 매료된다. 앞서 작가의 말처럼 작품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캔버스를 마주하고 유쾌한 춤을 추는 듯한 몸짓으로 작업을 완성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품을 감상하면 하나의 사물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황서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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