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걸리는 대로 수사해야 '검찰 개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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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걸리면 쓴다.’ 취재 메뉴얼에는 없지만, 현장 기자들끼리 공유하는 오랜 직업 윤리랄까. 물론 현실과 종종 부딪치지만, 그래도 견지하려 노력하는 원칙이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의 중심이고, 한 다리 건너면 연이 닿는 사회구조상 이런 사정, 저런 인연 고려하기 시작하면 기사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름 중립성을 지키려는 방어장치지만, 의도치 않게 펜끝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릴 때가 있다. 그래도 길게 보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간다는 게 오랜 경험칙이기도 하다.

‘걸리면 수사한다.’ 전 정부에서도, 현 정부에서도 권력과 불화한 ‘검찰주의자’ 윤석열 검찰총장의 행동윤리도 이런 게 아닐까. 범죄 혐의가 있으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수사해야 한다는 검사로서의 원칙론, 여기에 살아 있는 권력에는 더 엄정해야 한다는 특유의 반골 기질도 작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칼끝이 내부를 겨눌 땐 다소 무뎌보이지만, 검사 윤석열의 행태는 이 관점에서 보면 일관된다.

전·현 권력과 불화한 윤석열 총장
살아 있는 권력 견제라는 일관된 태도
‘정치 검찰’ 탈피 개혁 요체라던 與
권력 수사 용인해야 진정성 인정받아

‘윤석열 몰아내기’에 장관 권한을 다 쏟아부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검찰권과 사법권도 민주주의를 찬탈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끔직한 사례”라며 언급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를 봤다. 추 장관을 비롯해 여권 지지층에서 최근 이 영화를 자주 거론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브라질 노동운동의 대부이자 민주투사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전 대통령, 그 뒤를 이은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각고 끝에 권좌에 오른 뒤 검찰의 부패 수사로 좌초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부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똑닮았다. 구속 직전 “권력자들은 백 개의 장미를 죽일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은 절대 막을 수 없다”는 룰라의 절절한 연설 장면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강하게 오버랩시켰다.

그런 두 대통령을 나락으로 추락시킨 인물이 바로 세우지우 모루 연방판사다. ‘라바 자투(세차작전)’라는 이름의 반부패 수사를 지휘한 모루 판사는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를 장관으로 임명해 면책 특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언론에 공개하는 악착같은 수사로 룰라-호세프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악의 화신’과 같은 모루 판사가 여러 면에서 윤 총장과 ‘판박이’라는 점이다. 모루 판사 역시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고, 다음 정부에서 법무장관으로 중용됐지만, 결국 입장 차로 인해 집권세력과 갈라섰다. 모루 판사가 올해 정권이 권력층 수사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직을 던지면서 한 말이 “주인을 모시려고 정부에 들어간 게 아니다”였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말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좌초한 룰라-호세프의 후임은 각종 막말과 기행으로 ‘브라질판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다. 정·재계의 오랜 부패를 도려내려한 수사가 결과적으로 정치적 반동을 낳은 셈이다. 룰라 지지층이 모루의 수사를 “합법을 가장한 쿠데타”라고 하는 이유다.

얼핏 영화는 우리 현실과 유사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페르소나’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탈탈 털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파고든 윤 총장은 여권의 극심한 반발 속에서도 월성 1호기 수사에까지 진두지휘하면서 정권의 턱밑까지 수사의 칼을 들이대려 했다. 영화를 본 여권 지지층에서 ‘남의 일이 아니다’고 반응하는 모습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라바 자투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의 ‘사가와 규빈 스캔들’ 등 권력 지도를 바꾼 수사들은 하나같이 당시에는 “소영웅심에 사로잡힌 검사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정치권의 비판에 직면했지만, 반대로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모루 판사는 해외 언론에서도 ‘영웅’으로 극찬 받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매서운 견제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검찰상(像)이다.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의 수사가 ‘태산명동 서일필’이 될지, 정권의 레임덕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방향 없는 성실함이 때로 역사에 죄가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권력 눈치나 보고, 권력에 휘둘리는 ‘정치 검찰’ 행태를 벗는 것이야말로 검찰개혁의 요체라던 여권이 이제 와서 수사를 가려 하지 않는다고, 숲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건 누가 봐도 명분이 없다. 오히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권력에 충성하지 않는 전통을 존속시키는 것이야말로 여권이 그토록 강조하는 검찰개혁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길 아닐까?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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