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 부지 난개발” 각계 우려에 부산시 ‘배수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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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변경 불허 기자회견 배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투기자본 매각 저지와 일자리 지키기를 위한 부산시민대책위’가 지난 22일 부산 중구 산업은행 부산지점 앞에서 영도조선소 졸속 매각을 추진하는 산업은행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정종회 기자 jjh@

23일 부산시 최고 수장까지 나서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한진중공업 난개발을 막겠다’고 강력 경고 목소리를 낸 것은 한진중공업 매각 과정을 지켜보는 부산 여론이 그만큼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방증이다.

한진중공업 매각을 주도하는 산업은행 등 주주협의회가 지난 14일 진행한 본 입찰 직후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돌면서 지역에서는 한진중공업 앞날이 어디로 향할지 안갯속에 빠져 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졌다. 지난 22일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되자 다음 날 바로 부산시를 책임진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직접 나서서 한진중공업 매각 진행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부산노동계 “투기 자본 저지”
상공계, 조선업·고용 유지 촉구
새 주인 아파트 개발하려 해도
인허가권 쥔 부산시 의지 관건

변 권한대행은 23일 부산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으로 ‘용도변경 불허’라는 용어까지 거론하며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부지 난개발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아파트 건설 등 대형 부지 개발 시 부산시가 이렇게까지 선제적으로 강하게 경고 목소리를 내고 나선 전례를 보기 힘들 정도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진중공업 매각 입찰이 진행되는 동안 한진중공업 노조를 비롯해 노동계와 시민단체, 부산시의회, 부산상공회의소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나온 부산 각계의 우려 목소리를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매각이 본격화하면서 부산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먼저 동부건설 컨소시엄 등을 투기 자본으로 규정하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투기자본 매각 저지와 일자리 지키기를 위한 부산시민대책위’를 꾸리고 매각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선업과 관련 없는 투기자본들이 부지 개발이익을 노리고 뛰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22일에는 저지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부산상의 등도 거듭 한진중공업 조선업과 고용 유지를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이런 움직임은 매각 과정 곳곳에서 한진중공업에서 조선업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예비 입찰과 본 입찰 참여자 대부분이 사모펀드나 건설사 등 조선업과 관련이 없었고 22일 급기야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인수 1순위 후보로 올라선 것이다. 동부건설을 앞세운 이 컨소시엄에는 건설사와 사모펀드 등만 참여하고 있다.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조선업 유지 방침을 세웠다지만 부산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한진중공업이 경영 어려움에 빠진 후 대부분 자산을 매각하고 남은 것이 영도조선소 부지뿐이라는 점도 이런 우려의 근거다. 새 주인이 한진중공업 인수 후 조선업을 위한 대체 부지를 개발할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도 있지만 부산권역 내에서 이런 부지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의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조선업 진출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부지 개발밖에 다른 길이 없다”면서 “한시적으로 조선업을 유지하다 결국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26만㎡에 달하는 영도조선소 부지를 아파트 등으로 개발하면 인수 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이익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부산시까지 전면에 나서서 한진중공업 조선업과 고용 사수를 외치는 마당에 새 주인이 정해져도 한진중공업에서 조선업을 버리기는 쉽지 않아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진중공업이 한국 경제를 이끈 조선업의 첫 출발지라는 큰 상징성을 갖고 있고, 현재도 20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며 부산 경제의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도조선소를 다른 용도로 변경해 아파트 등을 개발하려고 해도 이번 부산시 선언으로 후속 행정절차를 밟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 전용공업지역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부지의 경우 용도 변경 절차나 지구단위계획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인허가권을 쥔 부산시와 영도구청이 이를 허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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