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한 슬픔·삶의 고통’ 짙게 깔린 슈만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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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평전 / 이성일

슈만(1810~1856)은 위대한 음악가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로잡히는 음악가다. 중저음이 많은 그의 피아노 음악은 견고하다. 문학적 향취가 그의 음악을 휘감고 있다. 당대 소설에 착안해서 쓴 작품도 있고, 아예 ‘단편소설집’이란 뜻의 ‘노벨레텐’(Op.21)을 작곡하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곡은 ‘트로이메라이’ ‘어린이의 정경’ ‘아라베스크’ ‘유모레스크’ 정도일까. 하지만 그 정도는 빙산의 일각, 겉핥기에 불과하다. 그에 대한 책도 많지 않다. 클라라와 슈만의 얘기를 하는 책 두어 권이 있고, 미셸 슈나이더의 <슈만, 내면의 풍경>이 아주 높은 경지에 오른 음악가만이 슈만 음악에 깃든 내면의 고통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정도다. 그래서 최근 출간된 <슈만 평전>은 반갑다. 46년을 살았던 슈만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브람스 평전>을 쓴 음악연구가 이성일이 썼다.

‘낭만주의 음악 대가’ 연대기적으로 서술
‘크라이슬러리아나’ ‘다윗동맹무곡’ 등
마돈나 클라라에 대한 사랑 담긴 걸작
젊을 때 힘들었던 삶, 그의 음악에 반영

슈만은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다. 쇼팽 멘델스존과 함께 트로이카다. 쇼팽은 아름답고, 멘델스존은 외향적이지만 가장 깊은 데 이른 이는 슈만이다. 슈만은 천재였다. 건반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크라이슬러리아나’는 매우 현대적인 걸작이다. 저런 곡이 1838년에 만들어졌다니! 슈만이 28세 때 쓴 이 곡에는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들어있다. ‘크라이슬러리아나’는 슈만이 평생 “내가 참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자부했던 곡이다. 사실 슈만 여러 곡들에는 그의 마돈나 클라라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음악으로 만들어진 꿈이라는 ‘환상소품집’,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스스로 열겠다는 것을 선언한 ‘다윗동맹무곡’, 슈만 어법의 새로운 로망스인 ‘3개의 로만체’ 등등에 클라라를 향한 마음이 들어 있다. 그 음악과 사랑은 너무나 깊고 아름답다.

20대 때 슈만의 음악은 쏟아졌다. 하나의 예만 들면 25세 때 완성한 ‘교향적 연습곡’은 서양음악사 변주곡 역사에서 한 획을 그어버린 기념비적 작품이다. ‘숭고한 관념과 완벽한 장인의 솜씨로 빚은, 최정상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 하나’다. 30대 초 클라라와의 사랑이 익어갈 때 1년간 가곡 150곡을 지었다. ‘시인의 사랑’을 비롯한 슈만의 걸작 가곡이 이때 완성됐다. 슈만도 슈베르트 못지 않았다. 아름다운 가곡을 창조하면서 영감이 분출했고 창작력이 폭발했다.

슈만은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를 존경했다. 그중에서 바흐를 최고로 숭배했다. “바흐는 모든 일을 해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완벽한 인간이다.” 슈만 음악 곳곳에 바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슈만은 베토벤도 흠모했다. 유명한 ‘환상곡’(Op.17)은 베토벤 10주기를 위해 지었던 곡이다. 거기에 클라라에 대한 사랑도 섞었다. 아주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것이 슈만의 음악이다.

초기의 아름다운 피아노 곡 중 ‘나비’가 있다. 저자는 나비는 슈만 음악의 상징이라고 한다. 나비가 애벌레에서 탈바꿈하는 변태를 통해 아름답게 재탄생하는 게 핵심이다. 요컨대 나비는 보다 높은 단계의 정신 실현 및 영혼의 변태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슈만은 그 나비를 좆아 영혼을 높은 단계로 고양시켜 나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슈만 음악에는 도저한 슬픔, 삶의 고통이 짙게 깔려 있다. 그는 10~20대 때 사랑하는 이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10대 때 큰 누나에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0대 초반에 형수 둘과, 형이 죽었다. 그는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클라라 같은 생의 여인이 더욱 필요했을 것이었다. 1854년 그는 라인강에 뛰어내리지만 지나가는 배에 의해 구조된다. 그 직전에 슈만이 쓴 것이 ‘유령변주곡’이다. 슈만은 저 너머 무엇을 보았던 거다. ‘유령변주곡’의 곡조는 슬프고 애잔하다. 계속 어떤 문을 노크하고 있는 것 같다. 슈만이 고통스러워했던 모든 것, 그 고통을 지나 이르게 된 편안한 곳이 모두 이 곡 안에 들어 있다. 슈만은 “천사가 내 귀에 음악을 불러주고 있다”고 했다. 이 당시의 슈만은 22년 전에 걸린 매독이 악화된 상태였다. 그 몹쓸 병이 오랜 기간 잠복해 있다가 끝내는 그의 뇌와 정신을 잠식한 거였다. 결국 자살 실패 사건 이후 슈만의 정신상태는 급격히 악화돼 그 후 2년간을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48세로 파란만장한 낭만주의적 생을 마감한다. 19세기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그의 음악은 새로운 문법을 보여주었고, 여전히 깊고 아름답다. 이성일 지음/풍월당/831쪽/4만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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