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51)칠리 곤잘레스 ‘A Very Chill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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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직 국내에서 다소 생소하지만 지난해 그에 관해 다룬 다큐멘터리 ‘닥치고 피아노!’가 개봉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를 단순히 음악을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티스트라고 하기에는 애플사의 광고 음악, 다프트 펑크와의 협업 등 우리가 예상치 못한 실험적인 무대까지 아주 넓은 영역에서 음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곡 ‘Never Stop’의 도입부를 듣는다면 ‘아 이 음악!’하고 누구나 생각할 정도죠. 짧은 광고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성이 강하게 녹아있는 음악입니다. 저는 그의 음악을 2010년 앨범 ‘Ivory Tower’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수록 트랙 ‘You Can Dance’를 무척 좋아했고 ‘멋진 팝을 선보이는 싱어송라이터구나!’ 생각했었습니다. 후에 그가 피아노 연주자이며 작곡가인 것을 알게 되었고 흔하지 않은 그의 행보에 항상 기대와 궁금증을 품게 되었는데요.

곤잘레스가 2020년 올해 선보인 새 앨범은 ‘A Very Chilly Christmas’라는 캐럴 앨범입니다. 그런데 이 캐럴은 우리가 생각하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 앨범과는 정서가 꽤 다릅니다. 마치 오래전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을 때의 순간이 연상되는데요.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소재와 이미지를 이어가지만, 마냥 행복하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다소 어둡기도 하고 때로는 쓸쓸한 우리의 이면을 보는 듯, 삶의 다양한 장면을 녹여낸 것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하지요.

첫 곡 ‘사일런트 나이트’부터 다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음악을 장조가 아닌 단조로 첼로의 선율과 함께 연주하면서 우리가 사는 현재의 시공간이 아닌 다른 세계의 크리스마스로 여행이 시작되는 듯 합니다. 이 정서는 음반의 음악이 흐르는 내내 유지되며 때로는 동화나 뮤지컬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 등 크리스마스 시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팝의 커버는 유쾌한 소품처럼 실리며 이 일관된 색깔을 너무 어둡지도 또 너무 밝게도 만들지 않는데요. 이러한 세심함은 이 앨범의 기조를 무척 사색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특히 영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와 싱어송라이터 파이스트(Feist)의 참여는 상당히 주목할 만합니다. 트랙 ‘The Banister Bough’, ‘In the Bleak Midwinter’ 그리고 ‘Snow Is Falling in Manhattan’에 이 두 사람의 노래와 낭독이 곁들여지며 추운 겨울 한 낮의 따스한 햇살을 맞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결말을 들려줍니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캐럴 음반이라기보다 마치 한 아티스트가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세상에 던지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희망의 이야기를 글로 읽는 듯 하죠. 여타의 캐럴 음반과는 다른 다소 독특한 향취의 이 앨범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기 때문이겠지요.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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