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청석 1열] 살인 피고인에 형량 5년 더한 항소심 재판부… 가혹한 범행에 치 떤 방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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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자비한 범행 수법을 고려해 1심의 판결 징역 30년을 파기합니다. 징역 35년을 선고합니다.”

23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제301호 항소심 법정 내부 공기는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자 무겁게 가라앉았다. 범죄 사실이 하나둘씩 재판장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법정 방청객들은 치를 떨며 푸른 수의를 입은 피고인을 쳐다봤다.10여 명이 자리를 지킨 방청석에서는 한과 울분을 토해내듯 연신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알던 여성 무참히 살해한 30대
고법 1심보다 센 35년 징역형
유기징역 중 최고 형량 선고
“언니와 가족 트라우마 너무 크다”

항소심 재판부는 10여 분에 걸쳐 범죄 사실을 설명했다. 재판부의 결정은 1심보다 더 강한 형량이었다. 피고인에게 1심 판결보다 형량을 5년 더한 징역 35년을 선고했고, 법정은 또 한 번 얼어붙었다.

항소심 재판부가 양형을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군다나 1심 판결의 양형보다 높게 선고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피고석에는 살인·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9) 씨가 서있었다. 그는 올 2월 부산의 한 주택에서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5개월 전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A 씨는 선고 직후 '형량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항소했고, 검찰도 이에 맞서 '더욱 엄중한 형벌이 필요하다'며 마찬가지로 항소했다.

이 재판의 결론은 지난 16일 공판에서 내려질 예정이었으나 선고는 일주일 연기했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 오현규 판사는 이날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며 분노를 억누르며 선고를 연기했다.

오 판사는 다시 열린 선고 공판에서 A 씨의 범행에 대해 “피해 여성을 공포와 고통 속에 삶을 마감하게 했다”고 양형 이유를 낭독했다.

재판부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A 씨는 지난 2018년 20대 초반의 여성 B 씨와 사적인 만남을 이어왔다. 그러다 B 씨가 연락을 끊자 A 씨가 돌변한 것. B 씨를 해치기로 마음 먹은 그는 B 씨의 집을 장기간 수소문하며 B 씨를 추적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심부름센터까지 동원하는 등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였다.

사건 당일 온라인쇼핑으로 구한 흉기를 들고 B 씨의 집에 강제로 침입한 A 씨는 B 씨를 협박하다 그 자리에서 무참히 살해했다. 당시 범행 현장에는 B 씨의 친언니도 같은 공간에 있던 상태였다. 친언니는 지금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판사는 “피고인 A 씨의 범행으로 인한 B 씨의 언니와 가족의 트라우마는 매우 크므로 엄벌이 필요하다”며 서글픈 재판을 마무리 지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징역 35년을 선고한 것은 A 씨의 범행에 대해 더욱 엄벌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부산고등법원 김덕교 기획법관은 "징역 35년형은 A 씨의 살인 혐의와 특수 협박 혐의가 더해진 것으로, 재판부가 살인죄에 대한 유기 징역형 중 가장 높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수·곽진석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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