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혜의 젠더렌즈] 여성의 힘은 정치 참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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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보건복지대 학장

미국의 선거 시스템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2020년 대선 결과는 여성이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지렛대임을 증명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 최초의 유색인 여성 부통령 당선인이 된 카밀라 해리스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100년 전 여성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라며 “100년 이상 투표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모든 여성들, 수정헌법 제19조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여성들 그리고 이번에 투표를 하기로 선택한, 그리고 투표권을 지켜 내기 위해서 계속해서 싸울 의지를 보여 준 그런 여성들이 있었기에 이 순간이 가능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여성이지만 제가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오늘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소녀들은 우리나라가 가능성의 국가라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 달성에 여성 역할 중요

변화에 반대하는 힘도 분명 존재

남성과 여성 의식 함께 바뀌어야

지속적인 올바른 사회 가능해져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며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여성의 삶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십 년 전에 비하면 여성의 삶은 변하고 있다. 사회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할당제가 적용되어 온 것은 여성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성을 가치 있게 여긴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의 조짐에 반대하는 힘 또한 항상 존재하므로 성 평등을 위한 속도는 늦어지기 일쑤이다. 군 가산점을 폐지했을 때 남성들의 폭발적인 역반응이나 아직도 여성가족부 폐지 운운하며 남성부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평등을 향해 나아갈 때 종종 부딪히는 반작용의 사례이다.

그러나 사실을 한 번 체크해 보자. 2019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 사회의 성별 임금 격차는 36.7%로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였으며 성 평등 점수는 72.9점으로 낮게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방해하는 ‘유리천장지수’도 OECD 28개 국가 중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점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앞서 제시한 반작용에도 불구하고 성 평등 사회에 대한 내 생각은 긍정적이다. 많은 남성들이 생각하듯 성 평등한 사회는 여성 상위의 사회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함께 협력하여 잠재된 가능성을 열어 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성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의 공동 협력이 가장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소위 평등한 복지국가의 모델로 언급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더욱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들 국가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0%를 넘고 있으며 출산과 자녀 양육에 의한 경력 단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남성들의 가사노동 참여 시간도 우리 사회와 비교해 4배에 달하고 있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등 교육, 법률과 제도상의 차별 제거, 대중매체의 올바른 인간상 조명 등 사회구조적인 전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남성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며 가사노동과 육아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기꺼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하고, 여성은 남성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생계의 의무를 책임지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결국 자유와 평등, 정의를 위해서는 여성을 포함한 모두가 민주주의의 지렛대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며 떠올린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100년간 싸웠던 우리의 선조 여성들, 정권을 바꾸기 위해 투표하기로 선택했던 동시대의 여성들, 그리고 이 상황을 눈여겨보았을 어린 여성들. 나는 이들이 마치 담쟁이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행동했던, 그리고 행동할 여성들이 아닐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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