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는 지금 문화 실험 중…창고군과 빈집이 이끄는 변화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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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새 문화벨트가 뜬다]
(상) INTER-플레이스 ‘영도’

부산은 지금, 문화 실험이 한창이다. 부산의 옛 모습을 간직한 영도는 내외부 사람이 몰려들며 ‘부산다움’이 재해석되는 가장 뜨거운 공간이다. 중구는 예술인이 모여든 중앙동을 중심으로 동광동 인쇄골목을 비롯한 주변으로 문화 공간이 확장되고 있는 곳이다. 쇠퇴한 항구였던 기장군 일광은 하나둘씩 개성 강한 카페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건축 성지’로 부상했다. 신축년을 맞아 ‘부산 새 문화벨트가 뜬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상) 영도- ‘부산다움’을 재해석하는 INTER-플레이스


부산대교 왼쪽으로 늘어선 영도구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 일대 모습. 물류창고가 문화 공간으로 하나둘씩 변신하고 있어 지금 영도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대교 왼쪽으로 늘어선 영도구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 일대 모습. 물류창고가 문화 공간으로 하나둘씩 변신하고 있어 지금 영도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정종회 기자 jjh@

영도는 지금 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이다. 한때 조선업의 영광이 가득했던 곳이지만, 산업이 재편되며 쇠락한 동네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부산의 옛 모습이 가장 많이 남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눈길 주지 않았던 공간은 내외부 사람이 드나들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기존 공간을 재해석하고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사이의, 상호 간’이라는 뜻의 접두사 ‘INTER’를 붙였다.


부산 근대 조선업 흔적 간직한 봉래동

옛 모습 살린 복합문화공간 속속 입주

빈집은 카페·책방·강의실 등으로 변신


■물류창고의 재해석

영도구 봉래동 창고군 일대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봉래동 한 물류창고에 그려진 그림. 조영미 기자 영도구 봉래동 창고군 일대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봉래동 한 물류창고에 그려진 그림. 조영미 기자

영도 안에서도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을 꼽는다면 단연 봉래동이다. 부산대교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영도의 입구다. 특히, 산업적으로만 이용되던 봉래동 부둣가의 ‘창고군’은 영도만이 가진 독특한 풍광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부산 바다 풍경의 대명사인 해운대해수욕장의 현대적인 마천루와는 또 다른 바다 풍경이 봉래동 창고군의 매력이다. 바지선과 어선, 부선이 뒤섞인 ‘날 것’의 모습이자 바다 건너 보이는 부산 원도심의 풍경은 진짜 부산 풍경으로 느껴진다.

2019년 봉래동 물류창고를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겸 카페로 개조한 ‘무명일기’, 프리마켓과 축제 콘셉트의 ‘영도 M 마켓’이 열리는 영도구 소유 창고(창의산업공간)는 이미 봉래동 창고군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무명일기(無名日記)’ 오재민 대표는 “영도는 부산에서 가장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선택했다”면서 “무명일기는 다양한 로컬 창작자들과 협업해 상품을 개발하고 선보이는 장소이자 때로는 인디 밴드 공연, 프리마켓, 공공행사가 열리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봉래동 한 창고를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이자 카페로 변신시킨 무명일기. 이곳이 산업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물을 그대로 남겨뒀다. 조영미 기자 봉래동 한 창고를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이자 카페로 변신시킨 무명일기. 이곳이 산업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물을 그대로 남겨뒀다. 조영미 기자

봉래동 창고군은 앞으로 더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 부산 대표 커피 회사 중 하나인 ‘모모스’는 최근 봉래동 해금ENG 자리의 창고를 매입했다. 이곳은 지난해 부산비엔날레 전시 장소로 활용될 정도로 다양한 문화 주체가 관심을 표한 장소다.

모모스 이현기 대표는 “생두를 보관하고 로스팅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여러 곳의 부지를 알아보다가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면서 “커피가 가공되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로스팅 팩토리이자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고 나아가서는 이 일대가 뉴욕 첼시마켓처럼 걸어다니면서 부산 브랜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 370평 규모로 내년 6월 오픈을 목표로 현재 설계 중이다.

봉래동 창고군과 멀지 않은 곳에 작가의 전시 공간이자 레지던시, 식음료·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판매 기능을 갖춘 10층짜리 문화 공간도 생길 예정이다. 2년 전 청학동 부둣가 물류창고를 ‘끄티’라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실험을 벌였던 소셜벤쳐기업 RTBP의 ‘영도물산장려회관’이다.


현재 건설중인 영도물산장려회관 부지. RTBP 제공 현재 건설중인 영도물산장려회관 부지. RTBP 제공
영도물산장려회관 부지는 옛 조선경질토기 자리였던 만큼 도자기 조각이 가득하다. RTBP는 이를 살려 영도물산장려회관이 들어서면 로컬 작가와 협업을 통해 아카이빙 전시를 할 계획이다. RTBP 제공 영도물산장려회관 부지는 옛 조선경질토기 자리였던 만큼 도자기 조각이 가득하다. RTBP는 이를 살려 영도물산장려회관이 들어서면 로컬 작가와 협업을 통해 아카이빙 전시를 할 계획이다. RTBP 제공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도자기회사 조선경질도기(이후 대한경질도기)가 있던 자리로 아파트가 올라 설 예정이었지만 잘 안돼 버려져 있던 빈 땅이었다. RTBP 김철우 대표는 “예술과 콘텐츠,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탄생하고, 체험과 구매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라면서 “현재 ‘끄티’도 리모델링 중인데 둘 다 내년 가을 오픈이 목표다”고 전했다.

봉래동뿐만 아니라 청학동에 있는 ‘끄티’와 ‘거청조선소’ 역시 물류 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예다.


■빈집의 재탄생

일상 생활 측면에서 본 영도는 2018년 기초자치구 소멸위험지수 부산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도시다. 그만큼 빈집도 많다. 2015년 기준으로는 빈집 분포가 원도심 3번째를 차지했다.

애물단지인 빈집은 도시재생사업이나, 개별 사업 주체의 매입을 통해 속속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먼저 봉래동 봉산마을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이 되면서 지난해 ‘빈집줄게 살러올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선업 노동자가 살았던 현장가옥으로 출발한 마을로 조선업 쇠퇴로 100여 채의 빈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8팀이 봉산마을 빈집 7곳을 개조해 입주했다. 칵테일 클래스가 열리는 ‘청마가옥’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원도심 풍광으로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일제강점기 잔재인 적산가옥은 목선 제작과 체험을 할 수 있는 ‘돛앤닻, 나무배의 꿈’과 영화 속 음식 체험을 할 수 있는 ‘주디’가 함께 쓰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칵테일 체험 공간 ‘청마가옥’. 빈집을 개조했다.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제공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칵테일 체험 공간 ‘청마가옥’. 빈집을 개조했다.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제공
‘청마가옥’에서 열린 칵테일 체험 모습.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제공 ‘청마가옥’에서 열린 칵테일 체험 모습.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제공
토우 체험을 할 수 있는 ‘봉산흙쟁이’ 옥상 모습. 정비가 완료되면 갤러리, 카페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제공 토우 체험을 할 수 있는 ‘봉산흙쟁이’ 옥상 모습. 정비가 완료되면 갤러리, 카페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제공

이외에도 도자기 체험 공방 ‘우리동네공작소 목금토’를 비롯해 식물 인테리어 수직정원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알로하그린’까지 다양한 단체가 입주했다. ‘알로하그린’ 김대영(38) 대표는 “바다, 산, 원도심까지 영도는 부산 오리지널 이미지를 다 갖춘 도시”라면서 “앞으로 길이나 주차장 같은 하드웨어가 개선되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봉산마을 입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영도 빈집을 개조한 주택에 입주한 레트로덕천의 전시 모습. 2020 레트로영도 아트멘터리를 진행했다. 레트로덕천 제공 지난해 영도 빈집을 개조한 주택에 입주한 레트로덕천의 전시 모습. 2020 레트로영도 아트멘터리를 진행했다. 레트로덕천 제공

흰여울문화마을 인근의 빈집을 전시·레지던시 공간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 문화예술단체 ‘레트로덕천’은 부산문화재단 빈집 사업을 통해 영도로 이주했다. 원래 북구 덕천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청년작가 4명으로 구성된 단체다. 레트로덕천 오미솔(33) 대표는 “빈집이었던 2층 주택에 입주해 지난해 6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청년작가 릴레이전을 열고 있다”며 “영도 지역성을 주제로 작가를 선정하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지속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낡은 집 6채를 매입해 삼진식품이 만든 ‘AREA6’ 전경. 삼진이음·가가호호건축사무소 제공 낡은 집 6채를 매입해 삼진식품이 만든 ‘AREA6’ 전경. 삼진이음·가가호호건축사무소 제공
낡은 집 6채를 매입해 삼진식품이 만든 ‘AREA6’ 모습. 중정을 비워 건물이 둘러싸는 구조로 지었다. 삼진이음·가가호호건축사무소 제공 낡은 집 6채를 매입해 삼진식품이 만든 ‘AREA6’ 모습. 중정을 비워 건물이 둘러싸는 구조로 지었다. 삼진이음·가가호호건축사무소 제공

낡은 집을 활용해 새 문화공간으로 만든 사례는 또 있다. 삼진어묵을 운영하는 삼진식품은 봉래동 본점 바로 옆에 있던 집 6채를 매입해 오는 15일 ‘AREA6’를 오픈한다. 원래 집 6채가 있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중정을 비우고, 이를 둘러싸는 모양으로 3층짜리 건물을 세웠다. ‘로컬을 밝히는 아티장(아티스트+장인) 골목’이라는 콘셉트에 맞는 8곳의 업체가 들어왔다.

‘영도 M마켓’ 인기 셀러였던 ‘희희호호’(수제 마카롱·디저트), ‘인어아지매’(건어물)를 비롯해 ‘송월타월’ 플래그숍, 로컬 전통주를 소개하는 ‘낮술밤술’ 같은 부산 브랜드부터 부산 외 지역에서 유치한 브랜드도 있다. 장인과 컬래버해 전통 공예품을 재해석하는 ‘취 프로젝트’, 가죽 원단을 소개하는 ‘WSL’, 중국 명차를 소개하는 ‘티가렛’ 같은 곳이다.

삼진이음 홍순연 이사는 “오후 6시면 어두워지던 동네의 낡은 집 6채로 만든 ‘AREA6’가 골목을 밝히는 기능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붙인 이름이다”라며 “앞으로 소상공인 거점 공간이자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영도 로컬이 소개하는 문화 공간

영도 거주 6년차이자 영도를 중심으로 청년 커뮤니티 하우스 ‘심오한집’을 운영하는 ‘심오한연구소’는 영도문화도시사업 중 하나로 영도 안 작은 섬을 연결하는 ‘섬, 선, 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영도 내 문화 공간과 사람을 소개하고 영도 주민 대상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프로젝트다. 영도 내 문화 공간 5곳(리케이온, 문제없어요, 와치홈바, 손목서가, 녹색광선)과 함께 각자 공간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달부터 실행한다.

심오한연구소가 소개한 5곳 중 2곳을 방문했다. 영도구 중리에 위치한 ‘리케이온’은 조용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카페이자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곳이다. 1년 내내 피고 지는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정원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 조경을 전공한 김수진(42)·김은주(39) 부부가 영국 유학 끝에 부모님 집이 있는 영도에 정착하면서 1층을 카페이자 강의실로, 2층을 거주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영도 중리 주택가를 개조한 정원 카페 겸 정원 아카데미 ‘리케이온’. 리케이온 제공 영도 중리 주택가를 개조한 정원 카페 겸 정원 아카데미 ‘리케이온’. 리케이온 제공
‘리케이온’에서 열린 문화 행사 모습. 리케이온 제공 ‘리케이온’에서 열린 문화 행사 모습. 리케이온 제공

이곳의 독특한 점은 총 60주 과정에 달하는 ‘정원 아카데미’를 김수진 박사가 무료로 연다는 점이다. 식물, 정원과 관련된 역사와 인문학을 총망라한 강의로 지난해 5월 카페 오픈 이후 40명 이상이 등록했고, 대기인원도 20명에 달할 정도로 영도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리케이온 김수진 대표는 “영도를 세계적인 정원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 아래 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오한연구소는 리케이온과 함께 영도 꽃집과 정원 디자이너와 협업해 작은 정원 만들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녹색광선’은 흰여울문화마을에 있는 독립서점이다. 바다와 바로 접한 만큼 책방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인 공간이다. 2년 전 이곳에 둥지를 튼 녹색광선 운영자 민승리(30) 씨의 관심사인 여성주의와 사회 현상을 다룬 책들이 가득하다.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에 자리잡은 책방 ‘녹색광선’에서 바라본 영도 바다. 조영미 기자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에 자리잡은 책방 ‘녹색광선’에서 바라본 영도 바다. 조영미 기자
‘녹색광선’은 여성주의와 사회 현상을 다룬 책이 많은 책방이다. 조영미 기자 ‘녹색광선’은 여성주의와 사회 현상을 다룬 책이 많은 책방이다. 조영미 기자

영화 연출을 전공했지만 책으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커 책방을 열어 서평을 쓰고, 책 소개를 한다. 심오한연구소와 함께 여성 서사 글쓰기 워크숍을 기획했다. 망미동에서 책방 비비드를 운영하는 임은주 작가를 강사로 영도 여성 주민과 함께 미시 서사를 써보는 글쓰기 워크숍이다. 민 씨는 “영도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교동 카페 ‘문제없어요’에서는 참여형 레게 음악회, 청학동 칵테일바 ‘와치홈바’에서는 칵테일 체험을, 흰여울문화마을 책방 ‘손목서가’에서는 커피 자가 로스팅 클래스가 열린다.

심오한연구소 심보라(34) 공동대표는 “영도 내에서 단순 소비 공간이 아닌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5곳과 함께 각자 강점을 살린 기획을 해봤다”면서 “영도가 쓰고 떠나는 공간이 아닌 즐기고 머무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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