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양장 창고와 버려진 빈집서 꽃피는 ‘부산다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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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새 문화벨트가 뜬다] (상) INTER-플레이스 ‘영도’

1.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영도구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 일대. 2.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이자 카페 ‘무명일기’. 3. 칵테일 체험 공간 ‘청마가옥’. 4. 삼진식품이 만든 ‘AREA6’. 5. 책방 ‘녹색광선’에서 바라본 영 도 바다. 정종회·조영미 기자 jjh@ 봉산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삼진이음·가가호호건축사무소 제공

영도는 지금 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이다. 한때 조선업의 영광이 가득했던 곳이지만, 산업이 재편되며 쇠락한 동네가 됐다. 역설적으로 부산의 옛 모습이 가장 많이 남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눈길 주지 않았던 공간은 내·외부 사람이 드나들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기존 공간을 재해석하고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사이의, 상호 간’이라는 뜻의 접두사 ‘INTER’를 붙였다.

부산 근대 조선업 흔적 간직한 봉래동
옛 모습 살린 복합문화공간 속속 입주
빈집은 카페·책방·강의실 등으로 변신

■물류창고의 재해석

영도 안에서도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을 꼽는다면 단연 봉래동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의 마천루와는 또 다른 바다 풍경이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의 매력이다. 바지선과 어선, 부선이 뒤섞인 ‘날것’의 모습이자 바다 건너 보이는 부산 원도심 풍경은 진짜 부산 풍경으로 느껴진다.

2019년 봉래동 물류창고를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겸 카페로 개조한 ‘무명일기’, 프리마켓과 축제 콘셉트의 ‘영도 M 마켓’이 열리는 영도구 소유 창고(창의산업공간)는 이미 봉래동 창고군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 대표 커피 회사 중 하나인 ‘모모스’는 최근 봉래동 해금ENG 자리의 창고를 매입했다. 모모스 이현기 대표는 “커피가 가공되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로스팅 팩토리이자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약 370평 규모로 내년 6월 개장을 목표로 설계 중이다.

봉래동 창고군과 멀지 않은 곳에 작가의 전시 공간이자 레지던시, 식음료·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판매 기능을 갖춘 10층짜리 문화 공간도 생긴다. 소셜벤쳐기업 RTBP의 ‘영도물산장려회관’이다. RTBP 김철우 대표는 “예술과 콘텐츠,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탄생하고, 체험과 구매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라면서 “현재 청학동 복합문화공간 ‘끄티’도 리모델링 중인데 둘 다 내년 가을 문을 여는 게 목표다”고 전했다.

봉래동뿐만 아니라 청학동 ‘끄티’와 ‘거청조선소’ 역시 물류 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예다.



■빈집의 재탄생

영도는 2018년 기초자치구 소멸위험지수 부산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도시다. 그만큼 빈집도 많다. 애물단지인 빈집은 도시재생사업이나, 개별 사업 주체의 매입을 통해 속속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먼저 봉래동 봉산마을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이 되면서 지난해 ‘빈집줄게 살러올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선업 노동자가 살았던 현장가옥으로 출발한 이 마을에 조선업 쇠퇴로 100여 채의 빈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8팀이 봉산마을 빈집 7곳을 개조해 입주했다. 칵테일 클래스가 열리는 ‘청마가옥’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원도심 풍광으로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일제강점기 잔재인 적산가옥은 목선 제작과 체험을 할 수 있는 ‘돛앤닻, 나무배의 꿈’과 영화 속 음식 체험을 할 수 있는 ‘주디’가 함께 쓰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낡은 집을 활용해 새 문화공간으로 만든 사례는 또 있다. 삼진어묵을 운영하는 삼진식품은 봉래동 본점 바로 옆에 있던 집 6채를 매입해 오는 15일 ‘AREA6’를 연다. 원래 집 6채가 있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중정을 비우고, 이를 둘러싸는 모양으로 3층짜리 건물을 세웠다. ‘로컬을 밝히는 아티장(아티스트+장인) 골목’이라는 콘셉트에 맞는 업체 8곳이 들어왔다.

삼진이음 홍순연 이사는 “오후 6시면 어두워지던 동네의 낡은 집 6채로 만든 ‘AREA6’가 골목을 밝히는 기능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붙인 이름이다”며 “앞으로 소상공인 거점 공간이자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도 로컬이 소개하는 문화 공간

영도 거주 6년 차이자 영도를 중심으로 청년 커뮤니티 하우스 ‘심오한 집’을 운영하는 ‘심오한연구소’는 영도문화도시사업 중 하나로 ‘섬, 선, 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영도 내 문화 공간 5곳(리케이온, 문제없어요, 와치홈바, 손목서가, 녹색광선)과 함께 각자 공간에 맞는 프로그램을 꾸려 영도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심오한연구소가 소개한 5곳 중 2곳을 방문했다. 영도구 중리 ‘리케이온’은 조용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카페이자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곳이다. 조경을 전공한 김수진(42)·김은주(39) 부부가 영국 유학 끝에 부모님 집이 있는 영도에 정착하면서 2층 주택 1층을 카페이자 강의실로 개조했다. 이곳의 독특한 점은 총 60주 과정에 달하는 ‘정원 아카데미’를 김수진 박사가 무료로 연다는 점이다.

‘녹색광선’은 흰여울문화마을에 있는 독립서점이다. 2년 전 둥지를 튼 녹색광선 운영자 민승리(30) 씨의 관심사인 여성주의와 사회 현상을 다룬 책이 가득하다. 심오한연구소와 함께 여성 서사 글쓰기 워크숍을 기획했다. 대교동 카페 ‘문제없어요’에서는 참여형 레게 음악회, 청학동 칵테일바 ‘와치홈바’에서는 칵테일 체험, 흰여울문화마을 책방 ‘손목서가’에서는 커피 자가 로스팅 클래스가 열린다. 심오한연구소 심보라(34) 공동대표는 “영도 내에서 단순 소비 공간이 아닌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5곳과 함께 각자 강점을 살린 기획을 해봤다”면서 “영도가 쓰고 떠나는 공간이 아닌 즐기고 머무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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