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골에 하루 한 끼… 코로나로 더 추워진 ‘복지 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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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새해 첫날 오후 2시. 부산 중구의 산복도로를 향해 가파르게 펼쳐진 대청동 계단길을 오르다가 좁은 골목을 따라 왼쪽으로 꺾으면 김 모(55)씨의 월셋집이 나온다. 현관문을 열자 냉기가 엄습한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5만 원 하는 김 씨의 집은 겨우 5평 남짓하지만 난방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2019년 10월 공사판에서 잘린 김 씨는 14개월 넘게 수입이 없다. 혈압이 높고 당뇨까지 발병해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일뿐더러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자리도 줄었다. 수입은 없는데 병원비에 약값까지 전보다 생활비는 더 늘었다. 두 달 전부터는 실업급여까지 끊겼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보험도 줄줄이 해약했지만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지금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월세를 20만 원으로 올려주는 대신 보증금을 빼서 겨우 버틴다. 그래도 최근에는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만 먹는 날이 늘었다. 건강보험료 같은 공과금도 밀리기 시작했다.

일자리 끊긴 50대 난방 엄두 못 내
독거노인들 기초연금으로 연명
쪽방 주민·노숙자, 배고픔과 사투
올겨울 무연고자 고독사 급증
‘방배동 모자 비극’ 되풀이 우려

김 씨는 “자존심을 접고 기초수급 신청을 했지만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면서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이다”고 울먹였다.

김 씨가 사는 동네에서 남쪽으로 10분 더 걸어가면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독거노인이 사는 동네가 있다. 이 동네서 20년 넘게 터 잡고 사는 박 모(82), 조 모(74) 할머니에게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두 할머니는 자녀들이 있어 기초수급을 못 받는 데다 지난해 12월부터 노인일자리 사업마저 끊겼다. 한 달 30만 원 나오는 기초연금이 유일한 생명줄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녀들이 주던 생활비도 끊겼다. 생업이 어려워진 것을 알기에 ‘왜 안 주느냐’는 소리도 못 한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한 달 병원비와 약값만 15만 원이라 남은 15만 원으로 산다”면서 “예전에는 연말에 부녀회나 교회서 김장 김치나 생활필수품들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노숙자와 쪽방촌 거주자들의 삶은 더 어렵다. 부산 동구 초량동 쪽방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이 모(61) 씨는 3달 동안 수입이 ‘0’원이다. 가끔 공사판에서 일용으로 일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곤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고관절 괴사와 퇴행성 관절염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이 씨의 곤핍함은 집 근처에 있던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끼니를 걱정할 지경으로 악화됐다. 이 씨가 하루 두 끼를 해결하던 부산 동구 수정동의 무료 급식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문을 닫은 지 10개월이 넘었다. 배가 너무 고플 때면 아픈 몸을 이끌고 부산역으로 나간다. 봉사 단체들이 점심나절에 나눠주는 도시락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졌음에도 기초수급조차 받지 못한다. 연락조차 끊어진 자녀들이 있어 기초수급 신청을 여러 번 했지만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쪽방 거주자와 노숙자를 돌보고 있는 한 활동가는 “이번 겨울 들어 쪽방 거주자나 노숙하는 무연고자의 죽음이 폭발적으로 늘어 화장 절차가 밀릴 정도다”면서 “당국이 복지 사각에 방치된 빈곤층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지 않으면 ‘방배동 모자 사건’ 같은 비극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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