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 해소, 공동 입시·학위 ‘대학 네트워크’가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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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산에서는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아니면 부산대 간다”는 게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부산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에게 “부산대보다 인서울”이 새로운 상식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격차가 벌어지면 수도권에 상위 서열 대학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 최근 한 교육시민 단체가 ‘대학 네트워크’와 ‘재정지원’을 대학 서열해소 방안으로 발표했다.


학령인구·양질 정규직 수도권 집중
지역거점국립대 ‘학생 이탈’ 등 위기
대학 서열 차이 클수록 임금 격차 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3단계 로드맵’
최소 성적 입시·학점 교류 등 제시
재정 지원 반값·무상 등록금도 거론



■굳어지는 ‘인서울’ 현상

부산시교육청 권혁제 중등교육과장은 지역거점국립대학 중 ‘맏형’격인 부산대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를 대략 20년 안팎으로 기억한다. 권 과장은 “부산에서 태어나서 초·중·고 과정을 부산에서 마친 학생일지라도 대학은 서울로 가야하고, 지역에 머무는 게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져있다”고 설명했다.

지역거점국립대 학생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권 과장의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부산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0학년도 부산대의 모집인원 4509명 중 합격 포기 인원이 3397명으로 무려 75.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학의 자퇴생 발생도 지속되고 있다. 경북대에서는 학생 600여 명이 매년 자퇴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자퇴생은 모두 2973명으로 기록됐다. 부산대와 충남대, 전남대 등에서도 한해 학생 500여 명이 자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거점국립대 이탈 학생들은 서울에 있는 상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 또는 반수를 선택한 것이다.



■인서울 여부가 삶의 질 판가름

2019년부터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세상이 열렸다. 학령인구도 수도권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부산의 학령인구는 2020년 30만 9000명으로 2010년 46만 7000명보다 무려 33.8%나 줄었다. 2017년생이 입학하는 2024년 이후부터는 부산의 학령인구가 20만 명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상위권 대학과 지역거점국립대학의 입학 점수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도 이 같은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김윤수수학원 김윤수 원장은 “수도권 학생들은 지방대로 가지 않고, 지방 출신 학생까지 가세한 수도권 대학 입학은 더 어려워져 합격선이 올라가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2010년 이후부터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도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입학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사실상 ‘인서울’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첫 관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과 지역 대학 졸업생들의 노동시장 진입 순간부터 일정 연령대까지 심각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이지영 전문연구원, 고영선 선임연구위원이 2019년 8월 발표한 논문 ‘대학서열과 생애임금격차’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잘 드러난다. 두 연구원은 148개 대학을 3개년 평균 수능성적에 따라 5개 분위로 나누었다. 5분위가 서열 최상위권 대학, 1분위가 최하위권 대학이다. 1분위 대학 출신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각 분위 대학 출신자가 임금을 얼마나 더 받는지 연령대별로 비교했을 때 1분위·5분위의 격차는 40~44세 때 46.5%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연령대 1·4분위 임금 격차는 32.6%, 1·3분위는 25.5%, 1·2분위는 11.7%였다.

■대학 서열과 인구 유출의 악순환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은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서열 해소를 위한 3단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사교육걱정의 대학서열 해소 3단계 추진 방향의 핵심 요소는 ‘대학 네트워크’와 ‘재정지원’이다. 우선 1단계로 2025년까지 국공립대와 사립대 40개 대학을 네트워크화한 뒤 2단계(2030년)에 80개 대학, 3단계(2035년)에 160개 이상 대학을 묶는 것이다.

이렇게 네트워크화된 대학은 공동 입시를 실시한다. 1단계 공동입시에서는 네트워크 정원(10만 명)을 고려해 성적 기준을 적용한다. 네트워크가 확대되면 최소 성적 기준을 적용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대학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학력 기준으로 입학 조건을 재설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네트워크화된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으로 공동학위·학점교류, 대학 자원 공유 등이 제시됐다. 또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통한 반값 또는 무상등록금, 교수 1인당 학생수 감축 등의 개선된 교육 여건 확보도 거론됐다. 특히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임교원 확보율을 끌어올려 대학이 ‘뽑기 경쟁’이 아닌 ‘가르치기 경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은 해당 방안이 실현된다면 2035년에는 수험생의 70%가 우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교육걱정은 지역균형발전과 대학서열 해소 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비수도권에서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교육걱정 정지현 공동대표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대학의 서열을 해소하지 않으면 인구 역외유출이 계속 발생한다”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에도 교육 수준이 높고 취업 잘 되는 대학이 생긴다면 수도권에 있는 학생들도 지역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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