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민주주의 위기 징후, 말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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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시민들이 가치 없는 발언을 금지하는 권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원리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그는 어떠한 권력에도 유해한 발언을 금지하는 권리를 부여해선 안 되며, 열린 사회는 어떤 공직자도 누구의 관점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원칙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했다.

말은 정치 체제의 성격을 규정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자유롭고 평등한 말하기다. 누구나 평등하게 말할 자유인 ‘이세고리아’와 무엇이든 말할 자유인 ‘파레시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이었고, 현대 민주주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 전체주의는 말을 왜곡한다. 나치는 유대인 절멸을 ‘최종 해결책’, 유대인 학살을 ‘특별 취급’, 장애인 살해를 ‘안락사’로 왜곡함으로써 국민의 생각하는 능력을 마비시켜 전체주의 동조자로 만들었다.

누구든 자유롭고 평등하게 말하기
동서고금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

최근 우리 사회 말의 억압·왜곡 심화
‘임명 권력’ ‘사법 통치’ 등 논란 불러

‘국민의 말할 권리’는 최고 기본권
부득이한 상황에서도 보장되어야


조국 사태와 작년 4월 총선을 거치며 우리 사회도 마치 전체주의 사회처럼 말의 억압과 왜곡이 심화하고 있다. ‘5·18역사왜곡처벌법’ 개정안은 헌법에 규정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 5·18 왜곡 발언의 반역사성과 이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의 기본권에 예외 규정을 두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대북전단금지법’과 수사 과정에서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강제할 수 있는 일명 ‘한동훈방지법’까지 언급하며 민주주의 복원을 거론한 것은 ‘촛불 정부’를 무색하게 한다. 심지어 국회에서조차 야당의 말할 권리가 억압됐다. 당연한 토론 절차인 법안 소위는 무력화됐고, 기립 표결까지 시도됐다.

말의 왜곡은 더 심각하다. 낡은 폐단과 관습이란 의미의 ‘적폐’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낙인찍는 도구가 되었고, ‘토착 왜구’는 공동체 구성원을 공격하는 용어가 됐다. 월성원전 감사 은폐와 조작 범죄 행위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왜곡됐다. 대통령의 통치 행위 역시 법 안에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도 잘못된 통치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었다.

정경심 교수와 윤석열 검찰총장 법원 판결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라고 규정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적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사사건건 사법 기관에 판단을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사법의 통치 개입’으로 왜곡했다. 같은 당 민형배 의원은 “대통령의 재가를 번복한 재판은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지탱 원리인 권력 분립을 ‘권력 간 불간섭’으로 왜곡한 것이다.

이원욱 의원은 “임명받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이기려고 한다.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란 놀라운 발언까지 했다. 강성 지지자들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임명된 권력도 헌법에 규정된 권력이다.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은 종속 관계가 아니다.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헌법으로 견제하도록 한 건 이유가 명확하다. 여론에 민감한 선출 정치 권력은 포퓰리즘과 반(反)법치, 대중 독재, 다수결의 패권 위험성에 늘 노출된다. 선거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임명 권력, 즉 사법부가 여론의 휘둘림 없이 오직 헌법에 근거한 판단으로 선출 권력을 견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법부를 ‘민주주의 최후 보루’라고 부른다.

‘민주적 통제’도 ‘선출된 대통령에 의한 통제’가 아니다. 공론과 합의로 만들어진 헌법에 따른 통제다. 법치가 곧 민주적 통제다. 선출 권력이든 임명 권력이든 헌법 안의 권력이며, 둘 다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오히려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을 장악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검찰 감사원 헌법재판소를 여당 인사로 채워 넣으며 임명 권력을 장악했다.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도 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현금으로 매수하며 민주주의를 무너트렸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개념의 씨줄과 실행 규범이라는 날줄로 직조된다. 개념을 명확히 해야 규범도 바로 선다. 우린 아직도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정권의 핵심이라는 이른바 ‘586들’도 민주주의를 거리에서 배워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혼동한다. 말의 왜곡과 개념 혼란은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 부재와 그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민주주의는 누구에게 허용되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의 바탕 위에 서 있다. 정부의 근원적 존재 목적은 국민 기본권 사수다. 합법적이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 할지라도 국민의 말할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 부득이한 상황이라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의견조차도 개인의 권리인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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