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 투명하고 뜻도 없는 물방울”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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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 김창열, 천상으로 회귀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김 화백은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롱한 물방울을 그린 작품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한국 현대미술에 큰 획을 그었다. 연합뉴스

“과묵하셨다.”

‘물방울의 화가’ 고 김창열 화백에 대해 신옥진 공간화랑 대표는 “좀처럼 말씀이 없으셨던 분”으로 소개했다. 신 대표는 “전시를 하며 오랜 시간 같이 있어도 말씀을 하시는 것이 ‘부산에 왔으니 회나 먹을까’ 이 정도였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신 대표는 공간화랑에서 1991년, 1995년 등 다섯 차례가량 고인의 전시회를 개최했던 인연이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고 김창열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다. 명필가였던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웠고, 이때 배운 천자문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가 된다. 고인은 중학교 2학년 때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1946년 월남했고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1972년 파리서 ‘물방울 회화’ 첫선
“전쟁 상흔·음양 조화 담아냈다” 평가
천자문·물방울 공존 ‘회귀’시리즈 인기
공간화랑서 여러 차례 전시 부산 인연


고인의 초기작 ‘상흔’ ‘제사’ 같은 작품에는 여동생을 잃고, 친구를 잃게 만든 전쟁의 상처가 드러난다. 고인은 1966년부터 3년 동안 미국 뉴욕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아방가르드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을 인연으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1970년 파리 근교 마구간에서 머물며 작업을 한다. 이때 부인 마르틴 질롱 씨도 만나게 된다.

고인은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물방울 회화를 처음 선보였다. 검푸른 단색 바탕 위에 투명한 물방울이 떠 있는 ‘밤의 행사(Event of Night)’라는 작품이다.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한 물방울 회화로 고인은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랐다. 물방울 회화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미학적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중반 <휘가로> 지를 이용한 작업을 통해 고인의 작품에 문자가 처음 등장한다. 이후 문자를 화면에 써나가는 작업으로 변화한다. 마대의 거친 표면에 물방울을 그렸고, 화면에 한자체나 색점, 색면을 채워 넣어 동양적 정서를 살렸다. 1990년대부터 인쇄체로 쓴 천자문 일부가 투명한 물방울과 화면에 공존하는 ‘회귀’ 시리즈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물방울 회화는 고인이 마구간에서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대야에 물을 붓던 중 캔버스에 물방울이 튄 것이 계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고인은 이에 대해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뒷면에 뿌려지니까 햇빛이 비쳐서 아주 찬란한 그림이 되더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전 작품에서도 ‘물방울’의 기운이 감지된 것으로 보인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김 화백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서 넥타이 공장과 유리공방에서도 일했다”며 “프랑스로 가기 전의 작업 중에 무지개빛 영롱한 프렉시글라스 조각 작품 등 입체 설치 작품도 있다”고 말했다. 기 관장은 “찍어 누르면서 삐져나오는 점액질을 메탈릭하게 그린 작업은 나중에 물방울과 연동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물방울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무색무취한 게 아무런 뜻이 없지. 그냥 투명한 물방울”이라며 “내 욕심은 그런 물방울을 갖고 그림을 만드는 것이었고 한평생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인의 ‘물방울’에는 개인적 상흔도 내포되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옥진 대표는 “가끔 한국전쟁 당시에 겪었던 참혹한 상황을 이야기하신 적이 있고, 프랑스에 가서도 나름 고생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영롱한 물방울을 그렸지만, 속으로는 어둡고 충격적인 것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95년 공간화랑 전시 때 <부산일보> 기사를 보면 프랑스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오랜 세월에 걸친 주요 구상에 대한 현상학적 탐구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회화적 법규의 한 요소로서의 형태 속에 구현된 것”이라고 해석한 내용이 등장한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2009년 1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김창열전’을 개최했다. 당시 전시에서는 고인이 물방울 작가로 정체성을 잡기 전 초기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선보였다. 기혜경 관장은 “김창열 화백은 ‘사이’에서 작업하신 분”이라며 “제 논문에도 쓴 적이 있지만 단색파와 극사실파 양쪽 모두에서 읽힐 수 있는 작업을 하셨다”고 말했다. 기 관장은 “김 화백은 물방울 하나 안에 빛과 그늘·어둠과 밝음을 넣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우주생성 원리라는 동양적 감수성을 서양의 기법으로 담아낸 화가였다”고 말했다.

고 김창열 화백의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에 마련됐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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