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담당자 전문성 결여… ‘정인이 사건’ 재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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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를 받고도, 현장에 가는데 사흘이 걸린 적도 있어요.”

지난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에 임용된 A 씨는 첫 업무로 아동학대전담직으로 배치됐다. 업무 전 아동학대와 상담에 관한 교육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전문성이 거의 없다보니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도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기존에 아동학대 업무를 담당하던 민간 전문기관의 인력을 대동해서 현장 조사를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간 기관의 전문가 일정이 맞지 않으면 학대 조사가 며칠씩 늦어지기도 한다.

민간 전문기관이 맡았던 업무
지난해 10월부터 지자체 이관
담당자 경력 짧고 업무 미숙
상황 오판에 늑장 처리 일쑤
전담 공무원 집중 교육 필요

정부가 ‘제2의 정인이’를 막기 위해 전담 공무원을 확대 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전문성 부족으로 아동학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현 정부 아동정책 일환으로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에 따라 지난 10월부터 전국 지자체에 배치됐다. 아동학대 조사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며 기존의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민간 위탁기관에서 지자체로 이관한 것이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아동학대조사, 학대피해아동 보호조치, 응급조치 등 아동학대 사건 발생부터 종결까지 전 과정에 개입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돼 있다. 대개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공무원들로, 전국 100여개 시·군에 시범 배치되어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수행 중이다. 부산에도 각 구군별로 2명가량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기피 업무로 분류되다보니 주로 신규 사회복지직 직원이 배치된다. 또 사회복지직 근무 경력이 있더라도 아동 관련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초 정책 의도와는 달리 전담 공무원이 종전에 아동학대 업무를 담당했던 민간 기관 인력을 대동해서 나가는 식으로 현장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 인력도 자신들이 아동학대를 전문으로 위탁받은 상태가 아니다보니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고도 공무원과 보호기관 인력이 일정을 맞추다보면 현장에 나가는 게 2~3일 이상 늦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A 씨는 “잘 모르다보니 전문가와 함께 나가야 하는데 아동전문 기관의 인력이 부족하다. 개인 판단으로 학대가 경미한 케이스는 그분들의 스케줄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실제로 현장에 나가면 이들 직원의 판단이 틀린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A 씨는 “한번은 경미하다고 판단해 현장에 3일 늦게 도착해 아이를 만났는데 만성적인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성 부족으로 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부산시아동종합보호센터 아동보호팀 사공예령 팀장은 상담은 표면적으로 신고된 사항 뿐만 아니라 과거, 그리고 미래의 학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발굴해야하는 매우 신중한 작업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겉으로는 부모와 사이가 좋아 보이는 아이도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공 팀장은 “어느 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맞았냐’고 묻는 걸 보고 갈 길이 멀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 정도는 맞으면서 크는 경우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직원도 있다고 전했다.

아동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자체로 업무만 끌어올 게 아니라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년간 부산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교육센터장을 역임한 아동보호 전문가 조윤영 부산종합사회복지관장은 “기존 민간 상담사들은 의무적으로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100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수년간 같은 업무를 반복하며 전문성을 쌓는다”면서 “반면 몇 개월 전 첫 배치된 공무원은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전문가에게 집중적인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혜랑·이상배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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