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실직’ 엎친 이주민 할머니, 막대한 병원비 덮쳐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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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겨울 한파가 창틈 새로 고스란히 스며드는 부산의 한 고시원에서 김순자(78·가명) 할머니의 의식은 점차 흐릿해져만 갔다. 카지노에서 잡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김 씨에게 코로나19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카지노의 불황으로 자연스레 일자리를 잃은 김 씨는 호흡곤란, 가슴통증으로 항상 괴로워했지만 제대로 된 병원치료도 받지 못했다.

고시원 관리자에 의해 발견된 김 씨는 병원에서 응급치료만 받고 퇴원했다. 고시원 월세도 내지 못해 그 길로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이 소식을 알게 된 부산 희망등대 노숙인 지원센터가 나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김 씨가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던 ‘이주민’이었기 때문이다.

고시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
입원 치료 후 퇴원해 임시 거처
3주간 치료비 3600만 원 미납
이주민 이유로 건강보험료 차별

김 씨는 호주제가 시행되고 있던 1980년대 한국에서 대만인 남자와 결혼했다. 김 씨는 호주제로 인해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대만 국적을 취득했다.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수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김 씨에게 남은 건 ‘화교’ 딱지와 건강보험 체납 고지서를 비롯한 빚더미뿐이었다.

부산시와 시의회 등의 도움으로 김 씨는 간신히 부산의료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4일 퇴원해 시민단체 ‘이주민과함께’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한 김 씨지만, 병원비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부산시의회 박민성(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김 씨가 3주간 부산의료원, 부산대병원 등에서 단순 입원치료만 받은 뒤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는 3600만 원이 넘는다. 박 의원은 “김 씨 같은 이주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미납한 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고 한 달 치 보험료까지 선납해야 한다”며 “내국인은 체납금을 감면하거나 분납할 수 있는데 반해, 이주민에게 감면 없는 일시 완납을 요구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주민의 건강보험료 최저액은 전년도 건강보험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로 산정한다. 연 소득 100만 원 이하의 극빈층으로 보면 이주민의 최저보험료는 내국인보다 7.7배 높다는 것이다. 부산시의회 조철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차별적인 제도 개선을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실무협의와 장관 면담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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