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 해소, 교육비 투자 ‘포용적 상향 평준화’가 해답”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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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 이메일 인터뷰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학의 서열이 교육비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부산대 전경. 부산일보DB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학의 서열이 교육비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부산대 전경. 부산일보DB

“진보 교육계의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이미 파산 상태” “정치와 대중을 폄훼하는 진보 교육”

이런 주장을 들으면 야당 또는 보수 교육계 인사의 비판처럼 여길 수 있지만, 놀랍게도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에도 관여했던 이범 교육평론가의 비판이다. 이 평론가는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냈으며,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정책보좌관으로도 일했다. 이 평론가는 진보 교육계와 인연이 깊지만, 몇년 동안 이들과 일하면서 겪었던 폐쇄성에 좌절감을 맛봤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지난 연말 펴낸 신간 〈문재인 이후의 교육〉에 고스란히 풀어놨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9월부터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인 이 평론가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 〈문재인 이후의 교육〉 출간

학생 1인당 교육비 따라 대학 서열화

서울대 4475만 원, 부산대 1822만 원

“정부가 5조 투자 대신 학생 선발권 갖고

공동입학제 실시해 대학별 인원 배정”


■대학서열은 물질적인 것?

책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이 평론가의 대학서열 원인 진단과 해소 방안이다. 현재의 대학 서열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서울대가 연고대(연세대·고려대)보다 좋은 대학인 이유는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 2018년 기준 서울대는 교육비가 4475만 원이지만, 연세대는 3173만 원이다. 부산대는 지역거점국립대 중 가장 많은 교육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1822만 원에 불과하다. 4년제 대학 중 교육비가 가정 적은 곳은 800만 원대로 서울대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렇다면 학령인구 쏠림 등 수도권 과밀 현상 때문에 ‘인서울’ 대학들이 다른 지역보다 서열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 평론가는 어떻게 볼까. 그의 대답은 “대학 서열은 지역과 관계가 없다”였다.

“KAIST나 포스텍이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서열 최상위권 대학 아닙니까? 대학 서열 원인은 적은 투자입니다. 부산대의 한때 커트라인이 연고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수준이죠. 이유는 현재 부산대의 1인당 교육비가 중경외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 평론가는 “대학 진학자의 서울 쏠림을 해결하려면 부산 지역 대학에 대한 투자를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어차피 고졸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대학 구조조정은 필연이다”고 덧붙였다.


지난 연말에 나온 책 <문재인 이후의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범 교육평론가. 지난 연말에 나온 책 <문재인 이후의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범 교육평론가.

■“포용적 상향평준화가 해답”

이 평론가는 진보교육계가 대학서열 해소 방안으로 제시한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가 이미 파탄난 정책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국공립대 네트워크가 실현되면 ‘1등 대학’의 타이틀은 서울대에서 연고대로 넘어간다”면서 “네트워크에 사립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공영형 사립대’ 역시 수도권 사립 대학들의 관심 밖이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가 제시하는 대학서열 해소 방안은 교육비 투자에서 출발한다. 전국의 국공립대와 서울의 주요 사립대에 대규모 재정 지원을 통해 수준을 끌어올리고, 대신 학생선발권과 맞바꿔 공동입학제를 실시하는 ‘포용적 상향평준화’가 그것이다.

공동입학제에 동의하는 대학에 교수 1인당 1억 원씩 파격적인 정부 재정을 투입하면, 서울대는 2260억 원, 연세대는 1862억 원, 부산대는 1335억 원을 받는다. 대학은 추가 지원금으로 교육 여건 개선에 주력해 교육 수준을 상향 평준화할 수 있다.

이 평론가는 책에서 “경희대는 이 사업에 참여하는데 한양대가 불참한다면, 경희대는 매년 14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아 대학 순위에서 한양대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된다”면서 “사립대들이 거부하기 힘든 조건이다”고 설명했다.

공동입학제는 대입 경쟁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공학과의 총 정원이 1만 명일 경우 이를 대학별로 선발하면 대입 경쟁이 나타난다. 하지만 1만 명을 공동선발하고 대학별로 배정하면 경쟁이 완화된다.

결론은 역시 돈이다. 이 평론가는 포용적 상향평준화 시행을 위해 드는 예산으로 5조 원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 예산(추경 제외) 512조 3000억 원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발표한 ‘대학 네트워크’ 방안(부산일보 1월 5일 자 18면 보도)은 세 명의 대통령이 연속으로 이어가야하는 중장기 프로젝트에요. 하지만 포용적 상향평준화는 한 대통령 임기 중에 실현 가능하죠.”


■왜 문재인 이후인가?

이 평론가는 책에서 한국의 교육을 문재인 이전과 문재인 이후로 나눴다. 왜 하필 문재인 대통령이 기준일까. 이 평론가는 문재인 정부 들어 겪은 두 가지 사건이 한국 교육의 전환점이 됐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는 2017~2019년에 벌어진 ‘대입제도’ 논쟁이다. 2017년 수능 개편안, 2018년 대입 공론화, 2019년 ‘조국사태’를 계기로 3년 연속 벌어진 논쟁에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다. 이제는 대중이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보편적 원격 교육’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 평론가는 정권 초창기의 ‘헛발질’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2017년 정부가 수능 개편안을 발표하기 전에 모두가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 전형부터 손봐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초·중·고 교육계와 대학이 모두 학종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귀가 그들 내부로만 열려 있었다”면서 “교육부는 보통 사람들이 학종 때문에 얼마나 큰 피로감과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감이 없었다”고 질타했다.

이 평론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일괄전환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그는 “정부가 공약과 달리 자사고 재심사를 통해 선별적으로 전환하라고 공을 교육감들에게 넘긴 꼴이 됐다. 이는 분명 교육청이 아닌 정부와 교육부의 책임이다”고 비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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