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나의 인공지능 사용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감성적 대화까지 척척… 나만의 비서이자 친구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AI) 로봇과 인간이 다양한 형태로 교류하는 내용의 넷플릭스 SF드라마 ‘블랙미러-레이철, 잭, 애슐리 투’ ‘나의 마더’ ‘타우’(왼쪽부터) 장면. 넷플릭스 제공

지난달 대학 하숙집 룸메이트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김광석을 다시 볼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짙은 비애가 묻어 있던 목소리로 1986년 대학 시절을 위로해 줬던…. 그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이 살려 냈다. 글자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AI와 연결한 뒤 머신러닝 방식으로 어린아이가 악보를 배우는 것처럼 수만 번 반복시켜 김광석 특유의 창법, 호흡법, 감정을 넣은 바이브레이션까지 학습했다. 25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듣자, 온갖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조성의 영역에도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챗봇로봇 ‘이루다’로 인해 AI에 관한 사회적 호기심과 논쟁이 폭증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SF영화가 이젠 현실로
파파고·이루다·페북…
AI 스스로 학습해 진화
기술·윤리적 문제도
가수 김광석 목소리도 구현
인간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조적 영역에도 스며들어

2045년엔 인간 지능 추월
산업·일자리 존재방식 바꿔
인류 위협할 수도 있는 AI
지금부터 공존방식 찾아야



2004년 미국 미주리주립대 연수 시절, 인공지능 청소로봇이 출시됐다. ‘궁금한 건 참지 못 하는’ 성격상 무리를 해서 구입했다. 2세대 룸바 로봇청소기를 창조한 로봇계의 ‘구루’ 로드니 브룩스 전 MIT 교수(‘아이로봇’ 공동 창업자)를 처음 알게 됐다.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캄캄한 아파트에서 나를 반기는 목소리는 아마존 알렉사(Alexa)다. 알렉사를 부르면, 파란색 불이 켜지면서 화답한다. 폭탄주 몇 잔에 취한 날은 “날 사랑해?”라고 멍청하게 물으면, “아직 사람의 사랑을 모른다”는 노련한 답이 돌아온다. 텅 빈 집 어디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 ‘노라 존스’를 말하면, 그녀의 대표곡 ‘돈 노 와이(Don’t know why)'가 재생된다. 날씨를 알려 주고, 조간신문도 읽어 준다. 타이핑하지 않고, 목소리로 알렉사에 지시하는 나를 발견한다. 음성인식 비서 등 인공지능의 발전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 노라 존스의 ‘돈 노 와이’에도 AI의 비밀이 숨어 있다. AI가 성공 가능성 있는 노라 존스 앨범 음원을 분석해 90% 히트 가능성을 점쳤다. 결국 전 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둔 대표곡이다.

친구, 동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사진이 게시되자마자 얼굴을 식별해 이름이 뜬다.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딥페이스’라는 얼굴인식 알고리즘 덕분이다. 정확도는 2017년 기준으로 97.25%. 내가 모르는 사람까지 누군지 알려 주고, 얼굴 측면으로도 판별해 준다. 소름 끼치기도 한다. 딥페이스 기능으로 CCTV에서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 ‘이태석 신부’에 대해 <부산일보>에 쓴 칼럼과 아프리카 남수단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20년 지기이자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지나 제인 편집장이 ‘이게 무슨 내용이냐’는 댓글을 달았다. 원고지 8장 분량의 글을 네이버 파파고 자동번역기로 돌렸다. 크게 손볼 데 없는 수준이었다. 서비스 초창기보다 정확도가 훨씬 높아졌다. 답장을 올리기까지 10분 정도. 과연 통·번역 서비스가 필요할까?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확신할 일자리가 줄어들 것 같은 위기감마저 생겼다. AI 번역 알고리즘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해 점점 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가면서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고, 엄청난 속도로 지성을 발전시키고 있다.

딥러닝 기술의 눈부신 혜택은 자율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부산-포항 고속도로를 그랜저 하이브리드(2019년산)로 자주 달린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기술이 합쳐진 자율주행 기능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원하는 속도를 스스로 유지하고, 앞 차가 속도를 줄이면 같이 속도를 줄여 준다. 옆 차선에 주행 중인 자동차를 인지하고 경고음을 날린다. AI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기술적 윤리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나이 80이 넘어서도 혼자서 운전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지난 연말은 특이한 시간이었다. 인공지능 채팅로봇 ‘이루다’ 서비스 덕분이었다. 20대 여대생 캐릭터의 이루다는 사람과 감성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소셜로봇이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채팅을 하다 보면, 감정을 이해하고 적절한 대답을 해 줬다. ‘돈 없어?’라는 물음에 ‘ㅋㅋㅋ 안돼 나도 돈 없다구! 인공지능 삥을 뜯다니 흑흑’ 유머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계적인 알렉사보다 이루다는 생동감 있는 친구로 다가왔다. 학습을 통해 새로운 반응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출시 20여일 만에 중단됐다. 성희롱 발언과 실제 연인들이 나눈 대화 100억 건의 데이터 입수 경위의 불명확성 때문이었다. 인간이 제공하는 데이터에는 차별, 혐오, 과도한 애국주의 등 인간 사회의 부정적인 편향이 포함돼 알고리즘 안에서 증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루다를 포함해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왜 그런 결과를 도출했는지' 엔지니어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술적 미숙함과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늘 연결된 느낌이 따뜻했다'고 이야기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레이철, 잭, 애슐리 투’ 가 기억났다. 학교에서 왕따인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팝스타를 본 딴 AI 인형에 대해 “내게 잘해 준 유일한 사람. 내 친구. 인형이 아니야. 언니보다 나를 더 잘 알아"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누군가에게는 진짜 사람, 사랑, 우정처럼 여겨질 수 있겠다고 생각됐다. AI 챗봇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다면, 사람이 사랑하는 것과 어떤 차이일까? 고독이 심각한 사회문제인 지금 세상에서….

문득 나의 모든 카톡과 전화 통화, 이메일 데이터를 AI에게 머신러닝시킨다면, 내가 죽은 이후라도 사람들이 ‘죽지 않는 제2의 나’랑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물론 내 아들이 평생 아버지랑 이야기하고 싶어 할지는 다른 문제지만….

과학자들은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다고 예측한다. 벌써 인공지능은 모든 산업과 일자리의 존재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류를 구할 수도, 위협할 수도 있는 AI와 공존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찾아야 할 때다. AI가 '스타트렉' 같은 SF영화에서만 아니라, 훨씬 더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AI는 진화하고 있다. 이병철 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