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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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는 20대 후반인 1926년 첫 번째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내놓아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부상한다. 이 작품은 1914~1918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허무감과 혼란상을 그렸다. 전쟁에 환멸을 느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소설 서문에 귀에 익은 문장이 보인다.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 미국 여류 시인 겸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소외감을 느끼며 방황한다는 의미로 ‘잃어버린 세대’라고 표현했다. 헤밍웨이가 같은 사회상을 담은 소설의 서문에서 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잃어버린 세대는 주로 1차 대전부터 1929년 세계 대공황 시기에 성인이 된 세대를 가리킨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뒤 1920년대 미국의 정서적 황폐와 물질만능주의에 절망하고 대공황 탓에 일자리가 없어 길을 잃은 채 방황한 청년들. ‘길 잃은 세대’나 ‘상실세대’로도 불린다. 이 용어는 1990년대 초 부동산과 증권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기 침체에 시달린 일본에서 자주 언급된다. 일본은 1991년 이후 장기 불황으로 취업하지 못한 1970~1985년생들을 잃어버린 세대로 일컫는다. 평생직장 개념을 없앤 오랜 취업 빙하기에 좌절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이 많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지난 13일 통계청이 2020년 고용동향을 발표하자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 때문이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로 전체 실업률 4%의 배가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까지 감안하면 청년 넷 중 한 명이 실업자다. 심화하는 취업절벽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겹쳐 일자리가 크게 감소한 까닭이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두드리다 포기하는 젊은 층은 계속 늘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냥 쉬는 청년이 지난달 42만 명으로 1년 전보다 25%나 증가했다. 지난 18일 매장 영업이 재개된 카페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취업 의지가 가상할 정도다. 청년이 한창 일할 나이에 경력과 지식·기술을 쌓을 취업 기회를 상실하는 건 개인은 물론 국가의 불행이다. 경제적 자립이 힘들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기는커녕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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