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태민안'에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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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독자부장

느닷없이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일가족이 코로나19 환자로 확진됐다며 우리 가족도 전부 보건소로 가서 감염 여부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직접 접촉자도 아닌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느냐 생각했지만, 확진자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일요일 오전 보건소를 가서 생전 처음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누군가 ‘뇌수까지 접근한 면봉이 영혼까지 헤집었다’는 말로 아픔을 표현한 그 검사는 의외로 간단하게 코와 입안의 점액만 채취하는 것으로 끝났다. 아픔은? 가족 4명이 모두 체감이 달랐다.

새해 누구나 개인적 소망 바라지만
올해 역시 코로나19로 절망 분위기
개인의 행복 추구가 우선일지라도
더불어 잘 사는 세상 위해 합심해야

결과를 기다리는 만 하루 동안 두통이 생기고, 오한이 느껴졌다. 다음날 ‘코로나19 검사 음성(이상 없음)으로 판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문자를 받고도 한동안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로도 방역복을 입은 분들이 아파트 입구와 엘리베이터를 소독하고, 가정마다 구청에서 소독용 휴지가 공급됐다. 급기야 보건소 직원이 집마다 방문해 문진검사까지 했다. 먼 곳이 아니라 코로나19가 문턱까지 다가왔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집이 불안해졌다.

일부러 절에 가지는 않지만, 산행하다가 사찰이 있으면 대웅전에 가서 절을 하곤 한다. 불교도는 아니지만, 꽤 오래전부터 그랬다. 절을 하면서 뭔가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곤 했는데, 마땅히 빌 게 없었다. 돈이 많이 생기게 해 달라든지, 예쁜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매번 소원 없이 절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마다 ‘나’가 아닌 ‘우리’의 요구를 속으로 되뇐다. 어떨 때는 남북 관계가 잘 풀려 금강산 관광을 다시 갈 수 있게 해 달라며 절하기도 했다.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다.

그런데 옛날 어느 시절, 절집 입구마다 많이도 걸렸던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사자성어는 늘 못마땅했다. 우선 종교(특히 불교가)가 너무 세속 정치와 근접해 있다는 느낌이었고,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세력을 위하자는 용어 같아서 반감만 들었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살기가 편안하다는 뜻의 국태민안인데, 당시로는 너무 한가로운 염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 보니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원으로는 국태민안만 한 게 없긴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나’를 좀 더 돌보기로 했다. 소원도 개인적인 것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얼마전 환경운동을 하는 이가 몇 년째 가꾸고 있는 경남 고성의 한 시골집(농막)을 다녀온 뒤로 더욱 그랬다. 50대 이상 도시인이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나는 자연인이다’란 말에도 동의하고 있다. 자연인 방송을 보고 있자면 참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면 인터넷에서 ‘농막’이란 단어도 자주 검색하고 ‘맹지’라는 단어도 부쩍 많이 접한다. 농막은 6평 이하로 굳이 건축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신고만으로 지을 수 있고, 맹지는 그 땅으로 접근하는 공용 도로가 없는 땅이라는 지식도 얻었다. 유튜브에도 시골 땅, 특히 자연인 하기 좋은 땅을 소개하는 각종 영상이 많아 퇴근 후 휴대폰을 들고 영상을 보다가 잠드는 적도 있다.

구체적으로 올해는 나만의 작은 땅과 그럴듯한 농막 하나를 가지는 것이 소원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떠랴. 남폿불 하나 밝히자. 수도가 없으면 또 어떠랴. 맑고 신선한 생수가 마트에 얼마나 많은가. 상상만으로 삶에 즐거움이 생기고, 활기가 돋는다.

누가 시골에 땅이 있다고 하면 괜히 조금 분양해 달라고 말을 넣고, 주말에는 허투루 놀러만 다닐 것이 아니라 좋은 땅이 있는 곳을 답사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언젠가 나만의 농막(?)이 생기면 갖춰야 할 각종 공구가 집안에 너무 많이 쌓인 것도 올해의 이 소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 혼자만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대는 코로나19의 위급성, 주변에 급증하는 환자, 매사가 짜증나게 하는 검찰 권력과 그 갈등, 보궐선거와 난립하는 후보, 나라 간 전쟁과 ‘호환마마’는 저리 가라는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 등등. 그러자 개인 소원을 바꾼 생각이 너무 한가롭게 여겨졌다.

다행히 부산의 거룩한 이웃들은 최근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 부산 지역 사랑의 온도탑을 예년보다 더 빨리 뜨겁게 달궜다는 기쁜 소식이 새해에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소원은 다시 ‘국태민안’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코로나 백신을 기다리며, 올가을 쯤엔 나만의 소원을 빌 날이 오길 간절하게 바란다.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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