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미나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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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하나. 아직은 날씨가 춥다. 하지만 절기로 보면 이미 봄이다. 오늘이 입춘이니 말이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지만, 봄은 입이 먼저 알아본다. 벌써 봄철 나물을 찾고 있으니. 봄에 가장 제격인 음식이 있다. 바로 미나리다. 미나리는 봄철 입맛을 돋우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다. 속담에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강회 먹을 때나 간다’는 말이 있다. 처갓집을 무시하는 말로 비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봄 미나리가 맛있다는 뜻이다. 미나리는 더러운 물에서도 잘 자라고 습지 정화능력도 뛰어나다. 들풀처럼 끈질긴 생명력도 가졌다. <동의보감>에는 갈증을 풀어 주고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기록돼 있다. 거의 사철 먹을 수 있지만, 특히 봄에 나는 미나리는 향이 진하고 연해 더 맛이 좋다. 줄기를 한 입 깨물면 ‘사각’ 소리가 난다. 미나리 하면, 요즘엔 유명한 게 경북 청도의 한재 미나리다. 줄기는 가늘면서 향이 강하다. 예전엔 전북 남원 미나리도 명성이 자자했다. 미나리는 씻어서 그냥 또는 회와 함께 먹거나 나물을 해 먹어도 좋다. 매운탕에 미나리를 살짝 넣어 먹는 맛은 그만이다. 아삭한 식감에 향긋한 미나리 향이 혀를 감싸고 돈다. 입 안 가득 봄이다.

미나리 둘.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가 최근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있어 세계 영화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아직 국내 개봉은 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미국에선 지난해 12월 먼저 개봉했다. 국내는 3월 개봉 예정이란다. 영화 제목이 ‘미나리’인 건, 영화 속 할머니(윤여정 분)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과 관련이 있다.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은 영화 제목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 미나리를 뜻한다고 했다.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 낸 영화 ‘미나리’는 그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집에서 키웠는데, 다른 채소보다 잘 자라는 모습이 그의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고 한다. 정 감독은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며 “미나리는 가족 간 사랑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제목이 왜 ‘미나리’였는지 그 궁금증이 이로써 해소된다. 이 영화로 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상(오스카) 유력 후보로도 거론된다고 한다.

영화 ‘미나리’의 국내 개봉도,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도 너무나 기다려진다. 더하여 봄철 입맛을 돋우는 미나리도…. 그래 우리는 지금 ‘봄’을 기다린다. 코로나19로 사라진 봄을.

정달식 문화부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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