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빠른 경제 성장은 ‘논바닥 노동’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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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난 국가/이철승

는 한국인의 불평등을 참신한 시각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 이철승은 주목 받는 사회학자다. 책의 이론이 정치하며, 잘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쌀이론’(?)을 펼친다. 쌀농사를 짓는 곳과 밀농사를 짓는 곳, 즉 동양과 서양의 사회 체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먹는 것이 그 사회와 문명을 규정했다. ‘쌀족’과 ‘밀족’의 차이는 프랑스 아날학파 페르낭 브로델도 깊이 얘기했다. 쌀은 완전체로 엄청난 물을 필요로 하지만 밀은 불완전체로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이 차이로 인해 서구는 밀로부터 자유로웠지만 동아시아는 쌀에 갇혔던 거다. 서구는 덜 위계적이고, 동양은 더 위계적이다. 이게 자본주의 발전을 다르게 했다.

서구는 밀로부터 자유로웠지만
동아시아는 쌀에 갇혀 ‘위계적’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경이로운 ‘벼농사 협업 시스템’의 작동으로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아시아 모델이 어엿한 자리를 확보했다. 흔히 말하는 유교자본주의가 아니다. 엘리트들의 유교가 아니라 기층민중들의 마을 협업 시스템이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유교는 벼농사 체제의 문화적 부품에 불과하다. 박정희 장제스 덩샤오핑 등 뛰어난 지도자를 들먹인다. 그러나 그건 유교를 들먹이는 것보다 더 협소한 얘기에 불과하다. 동아시아 농군·아낙들이 동아시아 모델을 가능하게 했다. 동아시아 빠른 경제 성장은 논바닥 노동과정에서 나왔다는 거다.

벼농사 협업 시스템은 ‘물 관리’의 정점으로서 ‘국가’를 만들었고 그 국가의 위계 구조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물론 국가나 정권이 재난을 극복하지 못하면 갈아치우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코로나19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유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BTS가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노래는 완벽하게 조율된 군무와 결합된 것이다. 현대 차, 삼성 휴대전화도 닮은 꼴 사례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훅 찔러 말한다. 벼농사 체제 유산의 단점은 연공제라는 거다. 이게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거다. 초봉 100으로 출발한다고 할 때 30년 뒤 OECD 평균은 170, 일본은 240이지만, 한국은 350까지 간다는 거다. 노조를 가진 386 정규직들은 자본과 싸우는 것 같지만 실은 서로 ‘사회적 거래’를 한다. 386 정규직과 386 정치인은 연결돼 있기도 하다. 그런 거래 속에 배제되는 계층이 청년, 비정규직, 비정규직 여성이다.

이게 한국사회 불평등의 핵심적 모습이란다. “연공제의 불평등은 생산성과 출생률을 저하시키고 신분제를 강화하며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의 이중화를 심화시킨다.” 연공제 아래서 정규직은 떡을 차지하면서 비정규직과 청년 등을 배제시키는 거다. 인구문제, 경제성장 둔화, 그 뿌리는 연공제에 있다는 거다. 사회역학의 구도 속에 연공제를 보고 있다. 연공제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을 개혁하는 것이 21세기 과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철승 지음/문학과지성사/384쪽/1만7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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