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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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퇴근길에 우연히 부동산 중개소 앞에 붙은 매물 광고를 본 아내가 눈이 휘둥그레져 들어왔다. “우리 아파트값이 얼마래요.” 며칠 있다 마침 그 앞을 지날 일이 있어 중개소 앞에 붙은 쪽지들을 슬쩍 봤더니, 정말 우리 아파트값이 1년 사이에 상상도 못 할 만큼 올랐다.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는 1년 사이에 10억도 오른다지만 우리 아파트는 고급도 아니며 대형도 아니고 신축도 아닌, 지은 지 20년이 넘은 지방의 중산층 아파트일 뿐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투기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아파트값이 남이 사는 아파트보다 더 많이 오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바로 투기꾼의 마음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내 마음이 바로 그렇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집을 여러 채 가진 것도 아니고 이 집을 팔아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으니 아파트값이 올라 보아야 나한테 실익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내가 사는 아파트값이 올랐다니까 괜히 마음이 들뜨는 것은 아마 나의 열정일 터이다. 하지만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정말 실패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확인하고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지는 것은 아마 나의 냉정일 터이다.

1년간 올라간 아파트값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증거

주택 공급 대책 내놓는 정부
수요 중심에서 공급 중심 기조 변화
논의 부족과 철학 부재 우려



서울은 부동산, 부산은 가덕도라고 한다. 4월 시장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서울시장 여당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두 후보 모두 주택공급을 늘리겠다고 나선 일이다.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며칠 전에는 국토부 장관이 서울에 30만 호를 비롯해 전국에 80여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변창흠 장관은 취임사에서 16번이나 공급을 언급해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장관만이 아니라 그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부동산 공급이 부족하다는 말이 다시는 안 나오게 하겠다고 강조했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는 누구나 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여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수요가 너무 많거나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요를 관리하는 정책이 있고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도 있다. 수요를 관리한다는 말은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강화한다는 뜻이니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관료들도 욕들어 먹기 십상인 정책이라 싫어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대부분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해 왔다. 수요정책을 선택한 정부는 노무현 정부 정도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좇아 수요를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책의 기본방향이 공급으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안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결정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처럼 중요한 정책의 기본방향을 전환하려면 청와대와 행정부와 여당의 정책결정자들이 모여 며칠 밤낮을 새우면서 회의도 하고 토론도 해야 한다. 당연히 실무자들과 정부 밖 전문가들을 불러 다양하게 의견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서도 나는 이런 과정들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게다가 정책의 기본방향을 전환할 때 그 과정을 주재하고 조정하는 일은 바로 청와대 정책실장의 역할인데, 요즘 이분의 이름을 언론에서 통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이 정부에는 처음부터 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물러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지만 그럴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담당 장관으로서 답답한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빵과 아파트의 정말 근본적인 차이는 밤을 새워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빵에는 투기적 수요가 없지만 아파트에는 투기적 수요가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들이 공급을 늘일 때마다 부동산 가격은 더 오르고 투기만 확산되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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