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네거티브 선거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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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단언하면 네거티브는 정당한 선거 방법이다. 선거는 내가 당선돼야 할 이유, 상대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유권자에게 호소해 지지를 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출마자는 도덕성, 공적 자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량을 혹독하게 검증받은 뒤 비로소 공적 지위를 확보한다. 인물과 정책 검증은 통과의례고, 네거티브는 선거의 필수 요소다. 문제는 사생활 음해, 가짜 뉴스, 사실 왜곡, 공포 조장과 같은 도를 넘는 흑색선전이다.

흔히 ‘선거는 전쟁’이라고 한다. 가장 훌륭한 전쟁 수단은 속임수다. 전쟁은 공동체 안위를 위해 어떤 수단도 용납되지만, 선거에서 속임수는 표심을 왜곡하고 공동체에 큰 피해를 준다. 더 나은 권력 선출은 대중의 집단지성에서 나온다. 과잉 네거티브는 이런 집단지성을 왜곡한다. 인물과 정책에 대한 유권자 대중의 판단을 방해한다.

인물·정책 검증이 통과의례인 선거
네거티브 자체는 정당한 득표 전략

하지만 도 넘으면 심각한 폐해 유발
정보 왜곡으로 유권자의 판단 방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부산시장 보선
반목·갈등 심하면 결국 시민만 피해


미국 41대 대선이 시작되던 1988년. ‘애완견, 겁쟁이’란 말을 듣던 공화당 부시 후보는 민주당 듀카키스 후보에 18%나 뒤져 있었다. 악명 높은 선거 컨설턴트 리 애트워터는 인종 문제와 함께 듀카키스가 젊은 시절 반전 시위 때 성조기를 불태웠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한편으론 흑인 범죄자가 등장한 TV 광고를 통해 사형제 폐지론자인 듀카키스가 당선되면 사회가 흉흉해질 것이라며 공포심을 조장했다.

부시는 결국 54% 득표로 승리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정책 검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경제를 망친 ‘최악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재선에 실패한다. 가장 잔인한 네거티브 선거로 평가된 이 대선은 1990년대 공화당의 ‘극우 혐오주의’를 촉발했고, 결국 트럼프까지 이어져 의회 점거라는 미국 역사 초유의 사태를 초래하는 비극의 씨앗이 됐다.

1996년 3명의 미국 선거 컨설턴트가 러시아에 위장 잠입해 옐친의 선거를 도왔다. 이들은 춤추는 장면으로 옐친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은 뒤 “공산당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까”라는 여론 호도용 조사를 광범위하게 벌였다. 동시에 옐친에게 우호적인 방송사를 통해 스탈린 시절의 암울했던 영상을 지속해서 내보내게 했다. 공산당 당수 주가노프 후보가 당선되면 공산당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는 공포심을 퍼뜨렸다.

1차 투표에서 6% 득표에 그친 옐친은 결국 결선 투표에서 54%의 기적을 만들며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어떤 비전 제시도 없이 오직 이미지와 공포 조장만으로 당선된 옐친은 집권 내내 포퓰리즘만 남발하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1999년 12월 KGB 출신 푸틴에게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고 권력을 내어준다. 옐친의 무능함은 러시아 국민에게 더욱 강한 권력에 대한 갈망을 키웠고, 푸틴의 20년 넘는 장기 집권을 불러왔다.

우리의 극단적 진영 정치도 과잉 네거티브 선거와 무관하지 않다. 2002년 16대 대선 때 3% 지지율로 꼴찌였던 노무현 후보는 ‘귀족 대 서민’, ‘정의 대 불의’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며느리의 하와이 원정 출산, 100평 빌라, 아들의 병역 문제 등 끊임없는 네거티브 공세로 이회창 후보를 궁지로 몰아붙였다. 선거 뒤 거짓 공작 폭로를 했던 당사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는다.

2002년 대선은 네거티브로 점철돼 정책은 완전히 실종됐다. 이 여파는 노무현 정권의 참혹한 실패를 가져온다. 거짓 폭로로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한나라당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임기 내내 사사건건 싸우며 탄핵 시도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온다. 노 정권도 이렇다 할 개혁을 하지 못한 채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황금기를 만들어 낸다. 이는 다시 보수에 독이 되어 보수 몰락을 가져온다. 2002년 대선은 우리 정치의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선거는 단지 리더의 선출 과정만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 비전과 전략을 만들고, 논쟁을 통해 정책을 국민에게 동의받는다. 그 과정에서 국정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 권력을 운용할 인재를 준비한다. 선진국들이 선거 과정에서 장관 후보자를 미리 알리는 ‘섀도 캐비닛’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선거가 집권 준비 과정인 셈이다. 정책 실종의 과잉 네거티브 선거는 국정 운영 실패를 불러옴은 물론 공동체 구성원의 불신과 위화감을 심화시킨다.

이제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은 절체절명의 전환기에 놓여 있다. 도를 넘는 과잉 네거티브로 정책이 실종되고 공동체에 반목과 갈등이 조장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부산시민이다. 어느 정책과 인물이 더 나은지 검증하더라도 선을 넘는 과잉 네거티브는 지양돼야 한다. 오직 당선만을 위해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극단적 네거티브가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만큼은 재연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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