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매스토피아] 수학으로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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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응용수학과 교수

우리는 매일 숫자의 홍수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지난 설 연휴에도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통계 자료가 나타내는 여러 수치와 마주쳤을 것이다. “지난달 농축산물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10% 상승했다” “지난달 전세금은 작년 같은 달보다 1.19% 올라 2018년 10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어느 리서치의 여론 조사 결과 A 후보는 40.5%, B 후보는 37.8%였다” 등의 뉴스가 그렇다.

그런데 일단 이런 통계 자료는 신문에 실리거나 웹 사이트에서 언급되면 자연스럽게 ‘사실’이 되고 출처와 사실 확인 없이 빠르게 퍼져 나간다. 우리가 접하는 통계 대부분은 추정값이며, 그중 상당수는 어림값이다.

통계 등 숫자 속에는 곳곳에 함정
바른 해석 능력 있어야 위험 피해
‘수맹’ 없애려면 미디어 역할 중요

그런데 이 어림값의 정확도와 정밀도를 분석할 줄 알면 ‘거래’의 희생양이 되는 걸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통계로 의견을 형성하고 판단을 내리며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정보 해석을 통해 손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통계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통계에는 곳곳에 함정이 숨어 있다. 수치의 정확도는 정답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정밀도는 특정한 세부 수치를 얼마나 확신하는지 보여 주는 지표이다.

앞에서 전세금 상승 폭의 예로 들은 ‘1.19’는 소수 둘째 자리까지 구한 정밀한 수이지만 추정값이므로 정확하지 않은 수이다. 통계 자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숫자로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정확도가 정밀도보다 훨씬 중요하다.

정밀하지만 부정확한 수치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 측정하는 방법의 신뢰도와 측정하는 자료의 다양성 때문에 통곗값은 불확실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 얻어진 수치가 과장되었거나 과소평가된 값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위험’을 피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수학자 존 앨런 파울로스는 숫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겪는 문맹을 ‘수맹’이라 하였는데, 통계 자료 해석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 올바른 표본 추출, 표본 크기와 수집 방법의 적정성, 응답자의 정직성, 오차 범위를 나타내는 지표, 빠진 데이터 여부, 쟁점을 흐리는 단순 비교 등을 주의해서 살펴야 수맹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일반 대중을 수맹에서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미디어 매체들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넘쳐나는 통계 자료의 홍수 속에서 일반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어떤 통계 결과를 발표할 때는 수치만 내어놓지 말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오차 범위에서 이런 결과가 도출되었는지를 그래프로 보여주고 수치로 설명하면서 신뢰도를 높여 주었으면 한다.

필자는 그동안 수학을 즐겁게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의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수학’은 이제 두렵고 싫은 단어가 돼 버렸다. 수학 자체는 즐거운 것인데, 그 즐거움을 느끼려면 정작 ‘수학’이라는 용어는 숨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가 그동안 학생, 교사, 학부모 등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운영해 온 ‘대중 수학체험 부스’ 안에 ‘수학’이라는 팻말을 올려 두었으면 사람들은 어쩌면 아예 들르지 않았거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섰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분명히 수학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고 싶어 한다.

수학의 기본 개념들을 이해하고 감탄하는 데는 상세한 부분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년간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지 않도록 해야 할지 고민하며 체험수학을 시작했다. 또 그 후 수학 교수로 32년 동안 대학에서 기하학을 가르치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추상을 직관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다. 그래서 기하 이론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지금도 다양한 수학 소프트웨어로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기하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젊은 인재들은 물론 일반 대중도 수학의 유용성과 아름다움을 깨달아 수학을 좋아하게 되면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도 밝아질 테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4차 산업 시대를 주도할 확률도 더욱 커질 것이다.

이를 위해선 미디어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고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미디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디어 매체들이 정치 같은 분야뿐만 아니라 수학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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