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거짓말과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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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페어웰’의 첫 장면은 “실제 거짓말을 바탕으로 한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거짓말’의 의미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곧바로 뉴욕에 사는 빌리와 중국에 사는 할머니의 통화가 이어진다. 할머니는 뉴욕의 겨울 날씨에 빌리가 잘 적응하는지 걱정하고, 빌리는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귀여운 거짓말을 한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있는 할머니도 빌리를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서 거짓을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기분 좋은 거짓을 말한다.

빌리는 6살이 되던 해 부모와 함께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2세대다. 중국에서 지낸 날보다 미국에서 살아온 날이 더 길기에 그녀의 정체성은 미국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빌리는 어린 시절 중국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있기에 서툴지만 할머니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중국인임을 잊지 않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 ‘페어웰’
이민 2세대 뉴욕 사는 ‘빌리’ 내세워
정체성·가치관 혼란 겪는 모습 그려

할머니 폐암 선고 계기 모인 가족
병명 알리는 문제 놓고 갈등 커져

‘작별’ 주제로 누구나 공감할 영화



그러던 어느 날 빌리는 할머니가 폐암 4기에 접어들어 3개월 후에 돌아가실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부모님은 일본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의 결혼식을 중국에서 한다는 핑계로 모이기로 했다며, 슬픈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빌리는 미국에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빌리는 할머니를 보기 위해 무작정 중국을 방문한다. 할머니 집에는 가족들이 도착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가족들은 중국의 전통이라며 할머니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식사 장면은 유독 따뜻하게 그려진다. 동그란 원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가족들은 할머니의 상황에 슬프지만 내색할 수 없어 답답하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아들들만 보아도 웃음이 터진다. 게다가 손자의 결혼식 준비에 들떠있는 모습은 병든 노인이 아니다. 오래 떨어져 있다가 만난 가족들이 어색함 없이 나누는 밥 한 공기 속에 정다운 말들이 오간다. 더 먹으라고 권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안부를 묻고, 할머니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이 어린 손주들은 할머니만 보면 눈물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피신하는 등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밥 한 끼 나누는 장면이다.

‘페어웰’은 이민 2세대로서 느끼는 혼란 또한 진솔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빌리가 할머니의 폐암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마주친 것은 슬픔 다음에 혼란이다. 그것은 미국 사회나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른 문화적 차이다.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빌리는 서구적 가치관을 내세우며, 할머니에게 병명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족들과 대립한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았지만, 중국인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큰아버지는 “동양에서는 한 사람의 삶은 가족과 사회에 속해 있다”며 끝까지 할머니의 병명을 숨겨야 한다고 말한다. 착한 거짓말도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병명을 밝히는 문제에서 빌리의 고민도 깊어진다. 사실 미국에서 자란 빌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에 힘들어한다. 그러나 빌리는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아시아계 미국 감독인 룰루 왕은 자신 또한 이민2세대로서 느꼈을 혼란과 거리감을 이 영화에 표현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또한 감독은 실제 자신의 할머니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완성했기에 보다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는 시대다. ‘페어웰’ 또한 넷플릭스에서 거액의 금액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다고 하는데, 감독은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이를 거절하고 A24 배급사와 계약을 했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 이 영화의 매력을 극장에서 느껴보기를 바란다. 영화를 보고나면 분명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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