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수레바퀴 핀’ 한국과 ‘주춧돌’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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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한국을 ‘린치핀(수레바퀴 핀)’이라고 했다. 대부분 이를 ‘핵심축’으로 번역하는데, 축이라고 하기에 핀은 너무나 가늘다. 오바마 정부 당시부터 한국을 표현한 용어로 트럼프 시대에 이어 바이든 시대에도 등장했다. 앞서 일본 정상과의 통화에서는 일본을 ‘주춧돌’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일본을 린치핀으로 부르다 2012년부터 이렇게 표현한다. 굳이 말하자면 큰 차이는 없는 외교적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어의 뜻을 떠올려보면 수레바퀴를 고정하는 핀과 집을 지탱하는 주춧돌의 무게감에는 차이가 느껴진다. 더욱이 ‘쿼드(Quad) 시대’의 주춧돌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9년 시작된 4개국 안보 대화를 쿼드라고 하는데,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4개국인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한다. 미국이 여기에 알파를 점차 추가해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흡사한 형태로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NATO가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안보 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항하는 조직이었다면, 쿼드는 오늘날 중국을 포위하고 대항하기 위한 안보 목적으로 구성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 한·일 정상과 통화
양국 역할 표현에 미묘한 어감 차이

새로운 태평양 질서 형성되는 시점
미·일 군사동맹 틀 계속 유지 전망

반면 북핵 문제는 더 어려울 수도
한국 관점에서 새 방안 고민해야


최근에는 ‘D-10’이라는 용어도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일종의 ‘G7(선진 7개 국가)’의 변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즉 민주주의(democracy) 10개국 그룹이라는 의미다. 아마도 중국을 비롯한 소위 ‘비민주적인 국가들’에 대항하기 위한 블록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공산주의와의 대립 논쟁은 오랫동안 보기 드문 일이었다. 소위 ‘국가사회주의’ 체제였던 소련의 해체 이후 무엇을 공산주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라고 한다면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일당 독재를 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사적 소유와 시장 논리(수요·공급의 법칙)를 부정해야 한다. 오늘날 이에 해당하는 국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중국만이 아니라 쿠바와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70년 전만 하더라도 공산주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신생 국가에서 벌어지던 소련식 공산주의 혁명은 귀족과 지주의 토지를 빼앗는 것부터 시작됐다. 농경 사회에서 토지는 대표적인 생산 수단이었고, 토지를 잃는다는 것은 권력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전 세계 지배 계급들이 갖는 공포는 ‘반공 노선’으로 단결할 힘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에서는 소련의 세력 확산과 남하를 막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체제’(1951)가 만들어졌고, 그 기반에는 ‘미·일 군사조약’(1951)이 자리 잡았다. 이후 ‘미·일 신안보공동선언’(1996)에는 소련이 빠지고, 북핵 문제가 현존하는 위협으로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미국은 중국을 공산주의 국가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러한 전략이 잘 통할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국가라도 함부로 토지를 빼앗을 수 없다. 또 오늘날은 토지보다 자본이나 기술이 더 중요한 생산 수단이다. 즉 산업화와 무역 전쟁 속에서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는 시대로 변화한 것이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의 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하지만 옛 소련을 막으려고 했던 기존 샌프란시스코 체제 역시 여전히 남아 있어서, 새 전략과 잘 맞지 않는 옷을 아직 입고 있는 꼴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4개국 안보 대화인 ‘쿼드 플러스알파’의 전략적 요청이 있게 된 것이다. 즉 과거 소련에 대처하기 위한 태평양 질서의 틀이 이제는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질서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새 질서에 맞는 제도는 무엇일까? 과거엔 미·일 방위조약이 중심이었다. 일본은 여전히 국가 이익을 위해 이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이를 바꾸기보다는 미·일 방위조약을 기반으로 몇 개국을 더 하는 ‘플러스알파’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반도에서 냉전 종식은 쉽지 않을 것이다. 미·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던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을 주춧돌로 계속 언급하는 것은 기존 틀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춧돌을 바꾸려다 집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린치핀과 코너스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될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인도-태평양 질서와 그 구조에서 한국이 린치핀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미국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의 관점에서, 한국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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