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02. 산수화에 담아낸 붉은 잔혹, 이세현 ‘Between Red-016FE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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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붉은 색채의 산수화가 강렬한 빛을 뿜어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굽이치듯 뻗은 산맥과 해안 절벽, 소나무 숲, 정자가 보인다.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 사이에 잔뜩 흐린 먹구름과 매캐한 포연이 피어올라 전통적인 산수화와는 달리 낯설고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붉은 산수화를 동양적인 감성으로 담아내며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세현 작가. 그의 ‘Between Red’ 연작은 붉은 색조 안에 전통적 동양화의 시점과 서양의 원근법을 결합해 재구성한 이미지이다. 그는 동양이 추구한 최고의 아름다운 경지인 산수화에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붉은색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세현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해를 뿌렸던 통영의 어느 섬이 부동산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사라지는 산, 바다 등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또 군 복무 당시 군사분계선에서 야간투시경을 통해 바라본 비무장지대의 비현실적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에서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의 이런 경험과 감정은 ‘Between Red’ 연작에서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의 이면에 비극적인 분단의 현실이라든지, 훼손되어 사라지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드러난다. 작품 속 곳곳에 드리운 구름에도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푸른 하늘의 흰 뭉게구름’과 ‘불안감을 자극하는 먹구름과 폭탄 화염’ 상반되는 두 이미지가 담겨 있다.

작가는 잠재된 인간의 폭력적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자연에 각인된 역사의 상처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상처를 모두 아우르고자 한다. 익숙한 자연 풍경이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번개 치는 먹구름과 자욱한 포연이 숨어 있다. 풍경 사이사이에 커다란 해골과 알몸을 그려 넣기도 한다.

이세현의 작품은 전통 산수화를 닮아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시점’을 취하는 서양식 묘사를 사용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풍경을 표현한다. 이러한 그의 풍경 이미지들은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에 대해 사유하며 새로운 상징적 세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류민주 부산시립미술관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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