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의 비애… 졸업식이 폐교식 된 좌성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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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성초등 김호선 교장이 19일 오전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선사하고 주먹 악수를 하고 있다.

부산 동구 좌천동 정공단에서 부산진교회 방향으로 치솟은 오르막길은 노인의 주름살처럼 홈이 파였고, 길바닥 얼룩은 검버섯을 연상케 했다. 증산 자락에 자리잡은 좌성초등학교에 가려면 문화관 앞에 설치된 ‘경사 엘리베이터(모노레일)’를 타야한다.

좌성초등 6학년 졸업생은 19일 영하 2도의 강추위 속에 이 길을 통해 마지막으로 등교했다. 그리고 재학생들에게도 마지막 등굣길이었다. 이날 좌성초등의 제66회 졸업식, 그리고 폐교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에는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급식 도구들이 트럭에 실려 반출되고 있었다. 학교 강당에 걸린 현수막에도 ‘졸업식 및 폐교식’ 문구가 더욱 또렷해 보였다.

67년 동안 1만 4280명 배출
범일·수성초등 등으로 ‘뿔뿔이’
2011년 이후 19개 학교 문 닫아

좌성초등 전교생은 6학년 졸업생 12명을 포함 모두 56명, 교사는 17명이 전부다. 1953년 3월, 6·25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설립 인가가 난 좌성초등은 올해까지 모두 1만 428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부산에서 신발산업 등 경공업 전성기였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좌성초등은 전교생 2000명이 넘는 ‘매머드급 학교’였다. 하지만 부산 동구를 비롯한 원도심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었고, 좌성초등도 10년새 전교생의 70% 이상이 급감해 폐교까지 이르렀다. 좌성초등의 남은 학생들은 인근 범일초등과 수성초등, 수정초등으로 흩어진다.

코로나19 탓에 참석하지 못한 학부모들을 위해 졸업식은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됐다. 이 학교의 마지막 교장인 김호선 교장은 검은 정장차림에 꽃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단상에 서서 6학년 학생에게 졸업장과 표창장을 직접 전달했다. 김 교장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포옹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주먹 악수’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어 김 교장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회고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해 “여러분 많이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강당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 ‘혜화동(혹은 쌍문동)’ 노래가 흐르자 스크린에서는 교실에서, 학교 텃밭에서, 체험활동 장소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사진을 바라보던 한 남학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교장은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창밖을 응시하다 영상이 끝나자 안경을 잠시 위로 올린 채 손으로 눈가를 만졌다.

부산 동구에서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은 좌성초등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3월에는 좌천초등이 폐교됐다. 이어 지난해에는 금성중도 문을 닫았다. 부산에서 2011년 이후 통폐합 등으로 폐교된 학교는 19곳이다. 이 중 초등이 11곳, 중등 6곳, 고등 2곳이다. 2000년만 하더라도 부산의 초·중·고 학생 수는 62만 2000명이 넘었지만, 2010년 46만 3000여 명, 지난해 30만 4000명으로 계속 하락세다. 부산시교육청은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는 ‘적정규모 학교 육성’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금정구 서곡초등과 북구 덕천여중, 강서구 가락중 등 3개교가 문을 닫는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은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 때문에 강당에 가지 못한 저학년 학생 반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화장실에서도 서러운 울음소리가 복도를 타고 퍼졌다. 김 교장은 “그저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결혼시켜 떠나 보내는 마음”이라고 아쉬워했다.

글·사진=황석하 기자 hsh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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