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또뚜야 황금빛살 미얀마 공동체 고문 "미얀마 민주주의 지지해 주세요"

황금빛살 미얀마 공동체 고문 또뚜야 씨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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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화투쟁 지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또뚜야 씨. 최우창 씨 제공 부산역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화투쟁 지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또뚜야 씨. 최우창 씨 제공

"싯아나신짜송예(군부독재 물러나라)"

모처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21일 오전 11시. 부산역 광장에는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 함성을 이끄는 이는 '황금빛살 미얀마 공동체'의 고문을 맡은 또뚜야(47) 씨. 이날 부산역 광장엔 붉은 옷을 입고, 투쟁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을 들고,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뚜야 씨는 1998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발을 디뎠다. 경기도에서 일하다 2005년 형이 살던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7년 미얀마에서 '샤프란 혁명'이 터졌다. 군부정권의 독재에 맞서 승려들이 앞장섰던 사건. 당시 수많은 승려가 군부 세력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또뚜야 씨는 부산·경남에 있던 20명가량의 미얀마 출신 동지들과 부산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자국의 실태를 알렸다. 이때 모인 이들은 미얀마의 황금빛 미래를 기대하며 '황금빛살'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2011년 이주민 쉼터와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타국살이의 어려움을 나눴다.

또뚜야 씨는 미얀마 군사정권 시절인 1974년 태어났다. 1988년 8월 8일 이른바 '8888항쟁' 당시엔 학생이라 시위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군사정권의 탄압과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보고 자랐다. 한국에 온 뒤에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1987' 등을 보며, 같은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2015년 미얀마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한국에서 지켜보며, 전율을 느꼈다. 이제서야 고국에도 '봄'이 왔구나 싶었다.

이달 1일, 고국에서 또다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얀마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실제상황이란 걸 깨달았다. 또다시 민주화 투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또뚜야 씨도 거리로 나왔다. 부산역 앞에서, 서면 번화가에서, 사상구 길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미얀마의 상황을 알렸다.

또뚜야 씨는 SNS를 통해 세계 곳곳의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2021년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피를 흘려야만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공식'처럼 된 것 같아 슬픕니다. 미얀마는 문민정부를 이루기 위해 이미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국민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으려면 이 싸움이 빨리 끝나야 합니다."

또뚜야 씨는 미얀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한국 국민들에게 관심을 둘 것을 호소했다. 그와 동지들은 오는 28일에도 부산역 광장에서 고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 국민들이 큰소리로 비난하고 외치면, 미얀마 군부도 잘못된 것을 깨달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디 우리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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