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가덕신공항 특별법과 막말 경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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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던 지난달 26일 전후 대한민국에는 부울경과 서울 지역 사이에 총성 없는 내전이 벌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됐다. 70여 년간 남북으로 갈라져 반쪽으로 지내 온 나라가 거기서 또다시 위아래로 나눠진 듯했다. 조금 부풀려서 말한다면 부울경의 동남권과 서울 중심의 수도권이 가덕신공항에 관한 한 심리적인 분단 상태에 놓였다고 해도 될 만큼 서로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졌다.

부울경이 염원하는 관문공항의 꿈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런 일은 부울경에도 관문공항이 필요하다고 목이 쉬도록 외쳤던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스갯말이 있는 것처럼 수도권의 이해관계와 부딪히는 지역 염원은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쉽사리 추진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수도권 일극주의자들에겐 서울은 대한민국 이상이기 때문이다.

부울경 20년 숙원 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 즈음 수도권 극렬 반대

‘대한민국의 수치’ ‘미친 정권’ 등
온갖 막말 동원 관문공항 꿈 폄훼

일류 공항 위한 통과의례로 치부
첫출발 했으니 중단 없는 전진뿐


그러니 대한민국의 관문공항은 오직 인천공항뿐이어야 하고, 비슷한 성격의 공항 건설은 절대 안 된다. 수도권의 속마음이 이런 판에 관문공항을 지향하는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에 올라왔으니 불현듯 열패감을 느꼈던 것일까. 실제로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될 즈음 서울 언론의 논조는 그야말로 막말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특별법이 법사위·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표현했다. 이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수치’를 부울경의 800만 지역민이 그토록 자나 깨나 원했던 셈이 된다. 한마디로 부울경 지역민이 수치스럽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견해차가 확연하고, 일이 진행되는 양상이 마음에 들지 않기로 어찌 지역민에게, 독자에게 수치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신문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했다. 나라에 망할 징조가 들었다는 것이다. 부울경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게 나라를 망치게 하는 일이라는 말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었다. 대통령과 여당에는 ‘선거에 이성을 잃은’ ‘선거에 미친 정권’이라는 말로 몰아붙였다. 이런 정권이 추진하는 특별법은 어떻게 불려야 하나. 그건 ‘막장 법’이다. ‘국정과 정치가 다 막장’이니, 여기서 추진하는 법을 막장 법으로 부르는 것은 이 신문의 주장대로라면 피할 길이 없다. ‘졸속’ ‘선거용 매표(買票)공항’ ‘포퓰리즘’ 등등은 차라리 점잖은 축에 속한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가 ‘묻지 마, 닥치고 고’라는 기세로 무조건 물고 흔들고, 찢어 대는 광경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서울의 모든 주요 신문이 이 점에서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었다. 국토부의 반대 논거를 앵무새처럼 그대로 읊어 댔다. 국토부가 가덕신공항 건설비를 느닷없이 28조 원으로 부풀리자 바람에 쏠리듯 일제히 그대로 따라 핏대를 올렸다. 불과 한두 달 전 10조 원 사업이라고 그들 스스로 말했던 수치와 엄청난 괴리가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가덕신공항 건설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에 국토부의 논거가 이치에 맞는지 그른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니 부울경에서 아무리 분명한 반박 논거를 제시해도 이런 게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가덕신공항에 대한 막말 경연장에는 정치인 등도 빠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의원은 “가덕도공항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릴 수도 있다”라고 했고, MB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고추 대신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수도권주의자들이 지역에 있는 모든 공항을 한꺼번에 싸잡아서 조롱할 때 쓰는 ‘전문 용어(?)’인 ‘고추 공항’의 낙인을 24시간 관문공항을 지향하는 가덕신공항에도 어김없이 찍은 것이다. 더 나아가 ‘멸치 공항’까지 거론한 것을 보면 골수에 박힌 지역 폄훼와 우월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심리적으로 우리가 정말 같은 국가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만큼 괴리감이 크다. 하긴 김해신공항 타당성 검토 결과가 발표되던 지난해 11월엔 “가덕도로 (신공항을) 옮기겠다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가덕신공항에 대한 막말 경연장이 얼마나 넓게 펼쳐졌는지 알 만하다.

시정무뢰의 말처럼 들렸지만, 가덕신공항이 잉태되는 시점에 쏟아진 많은 막말을 오히려 쓴 약으로 여기고 싶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일류 공항을 만들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서울 언론이 언제 이렇게 요란하게 부울경 현안을 다룬 적이 있었던가. 이미 신공항은 잉태되었으니 쉬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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