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조선명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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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란’이라고 불리는 전통의 명란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조선명란은 ‘한국 김치’처럼 너무 당연한 말인데…. 하지만 김치의 경우만 봐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김치를 현지화시켜 채소절임의 일종인 ‘기무치’를 만들었다. 먹는 걸 탓할 수는 없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기무치를 공급하겠다고 나선 일은 지나쳤다. 김치 표준안이 그래서 정해졌다. 요즘엔 중국이 나서서 김치가 자기들의 고유문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백과사전인 바이두에는 김치를 ‘파오차이’로 명시하면서, 기원을 중국으로 서술했다. 옛날부터 중국에서 공을 만들어 찼으니 축구는 중국에서 나왔다고 우기는 식이다.

명태는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시가 되어도 좋고 안주가 되어도 좋다고 했다. 명태의 유래도 너그럽다. 조선 시대 함경북도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태씨(太氏)가 어느 날 낚시로 잡은 고기를 도백에게 드렸다. 도백이 맛있게 먹고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자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라고 했다. 1652년 <승정원일기>에는 “진상한 알젓에 명태알이 섞여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부산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부산 지역 최초의 근대적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명태 고방이었다. 바다를 통해 함경도 일대에서 가져온 명태를 여기서 보관했다. “부산 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유행했다.

일본식 명란인 멘타이코(明太子)는 후쿠오카 명물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가와하라 도시오라는 사업가가 초량시장에서 먹었던 명란을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숙성 절임 방식인 멘타이코는 가쓰오부시, 설탕, 맛술이 들어 단맛이 느껴진다. 부산 기업 덕화푸드가 개발한 젓갈 방식의 조선명란에는 고춧가루와 마늘이 들었다. 발효를 통해 수분이 빠져 짭짤하면서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동안 국내산도 멘타이코처럼 염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선명란은 안초비처럼 강렬한 맛을 경험하게 해 준다고 하니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조선명란의 복원은 요리전문가, 인문학자, 역사학자, 연구원이 모여 오랜 기간 레시피 테스트를 거친 결과라고 한다. 남선창고가 있던 자리를 지날 때면 늘 아쉬운 마음이 든 게 사실이다. 원조도 좋지만 더 맛이 있으면 손님은 옮겨 가기 마련이다. 문화는 지키고 가꾸어 가지 않으면 사라진다. 조선의 식재료, 명란의 건투를 빈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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