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3기 신도시 철회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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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국회의원을 전수조사하고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한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해체 수준으로 뜯어고치고, 공공기관 임직원 한 명의 투기가 적발되면 해당 기관 임직원 모두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도 놓는다. 고위 공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자에게 재산 등록을 의무화하고, 5급 이상의 공직자에게는 농지와 임야 등을 강제로 처분케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LH 임직원 투기 의혹 일파만파
정부 “부동산 범죄와 전쟁” 호언
조사 권한 한계로 공염불 우려

부당이익 환수 소급 적용 불가
외양간 고치고 도둑 안 잡는 격
신도시 백지화 주저할 일 아냐


LH 임직원 등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쏟아지는 대책들이다. 그런데 투기 당사자들은 “꼬우면 이직하라”며 그런 모습을 비웃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패가망신할 정도의 처벌”을 언급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투기꾼을 발본색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눈치 빠른 공직자라면 자기 이름으로 투기할 리가 만무하다. 투기 의혹을 제대로 밝히려면 공직자의 가족, 지인, 친·인척까지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조차 그럴 권한이 없다. 더욱이 공직자도 그들의 가족도 아닌 일반인 투기꾼은 아예 조사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 운운하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투기 행위를 적발해도 처벌은 또 다른 난관에 부닥친다. 우선 투기 행위를 증명하기가 지독히 어렵다. 공직자의 투기 행위를 금지하는 법은 부패방지법, 공공주택 특별법 등이 있지만, 어느 법을 적용하더라도 직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당사자가 “떠돌던 풍문을 술자리에서 들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설사 이를 입증해 처벌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 총리는 농지법을 적용해 소유권을 박탈하고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는데, 물정 모르는 생각이다. 현 농지법으로는 투기로 수십억 원의 이익을 거둬도 기껏 수천만 원의 벌금형이거나, 혹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투기로 인한 이익을 환수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지만, 법이 만들어진다 해도 소급 적용은 안 된다. 투기로 이미 한몫 챙긴 사람은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는 것이다. “꼬우면 이직하든가”라는 조롱은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 그대로 놔두는 게 옳은 일인가?

들을 만한 목소리가 있다. 3기 신도시 계획을 철회하자는 주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지만,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3기 신도시를 철회해 달라’는 청원이 여럿 올랐고 그중 하나에는 동의자가 22일 11만 명을 넘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 정도가 “3기 신도시 철회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3기 신도시는 이미 투기와 비리의 온상이 됐다. 그런데도 관련자들을 온전히 색출하지 못하고 부당이익을 환수하지도 못한다. 이런 3기 신도시를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건 그런 불합리를 그대로 묻어 두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3기 신도시를 철회하면 투기자가 공직자든 그 친척이든, 또 일반인이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 투기로 인한 이익은 발생하지 않게 할 수 있다. 또 그들이 부채를 안고 투기했다면 상당한 정도의 처벌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투기로는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다는 실효적인 경고가 될 수 있다.

3기 신도시 철회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집 없는 서민만 피해를 입을 거라 말한다. 꼭 그런가. 부작용으로 치자면 나라가 온통 투기판으로 전락한 지금의 부작용만큼이나 할까. 과거 노태우 정부의 1기 신도시, 노무현 정부의 2기 신도시는 집값 안정을 위한 특단의 공급 대책으로 홍보됐지만 결국 투기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집값은 집값대로 폭등했다. 신도시가 집값 안정의 대책이 아니라 원인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비리와 투기로 만신창이가 된 3기 신도시는 밀어붙인다 해도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그래도 신도시가 꼭 필요하다면 투기 대책을 완벽히 세운 뒤 다른 신도시 계획을 세우면 될 일이다.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그게 서민을 위하는 길이다.

곳곳의 투기 의혹에 우리나라가 이토록 부패한 나라였던가 놀라고 실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공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바탕으로 한다. ‘신상’보다 ‘필벌’이 더 중요하다. 이번에는 묻어 두고 다음부터 잘하자, 이건 안 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정비도 꼭 필요하지만, 그 전에 죄 있는 곳에 반드시 벌이 있다는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외양간만 고친다고 다가 아니다. 도둑도 잡아야 한다. 잡히지 않은 도둑은 또다시 소를 훔치기 마련이다.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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