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개나리꽃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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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날이 풀리니 온갖 꽃들이 눈앞을 어지럽힌다. 피는 데 순서가 없고 남북도 없는 것이 요즘 세태와 닮았다. 벚꽃 피는 날짜로 등고선을 그리던 ‘개화 지도’가 사라진 지는 꽤 오래다. 동래 천변에 핀 벚꽃이 반가워 서울 사는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려 했더니, 여의도에 핀 벚꽃 사진이 먼저 와 있다.

흐드러진 꽃들 속에서도 나는 구태여 개나리를 미워한다. 이것은 가을이든 겨울이든 가리지 않고 양달이기만 하면 비실비실 노랑꽃을 피운다. 따뜻한 햇살이기만 하면 어디서든 꽃을 피우는 무절제가 미운 것이다. 아, 옛사람들도 개나리를 미워했던 듯하다. 꽃 이름을 ‘나리’라고 해도 될 것인데, 구태여 그 앞에 ‘개’를 붙여 부른 뜻은 그것의 비천함을 미워해서이리라.

차가운 능선서 봄을 알리는 붉은 진달래
계절·장소 안 가리는 천방지축 노란 개나리
참일꾼 뽑는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의 색깔, 맑은 눈으로 가려내야

반면 산길을 가다 문득 만난 아기 진달래의 붉음이 반가운 것은, 그것이 차가운 능선의 길섶에서 피어나 봄을 알리기 때문이다. 옛사람들 역시 달래 중에 그것을 진짜 달래로 여겨 ‘진’달래라 이름 지었던가 싶다. 따로 진달래를 ‘참꽃’이라 높여 부르는 것이 그렇고, 또 비슷하지만 다른(이걸 사이비라고 한다) 철쭉은 ‘개꽃’으로 비하하였으니 더욱 그러하다.

개나리, 개꽃과 비슷하기로는 목련이 있다. 해 바른 구석진 양달에 하얀 속살을 ‘날 좀 보소’라며 한껏 드러냈다가 금방 낱낱이 떨어져 검게 썩는 꼴이 그렇다. 반면 동백꽃은 진달래와 닮았다. 찬 기운을 이기고 빨갛게 피었다가, 꽃잎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통째로 툭 떨어져 죽는 것이 꼭 선비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선비는 제 머리통이 땅 위에 구를 것을 각오하며 산다’고 하였던 터.

선비를 뜻하는 한자 ‘사(士)’는 도끼 형상이다. 밑바닥 짧은 가로줄은 도끼날이요, 위로 솟은 세로줄은 몸통이고 그 위 긴 가로줄은 자루다. 이 글자를 조선에서는 선비라 새기고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라고 읽는다. 도끼를 가슴에 품고 올바름을 행하는 자가 선비요, 도끼로 명을 집행하는 자는 사무라이다. ‘무항산, 유항심’이라, 고난 속에도 외길 걷기가 선비와 사무라이의 공통점이다.

예로부터 선비를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네 꽃나무에 비겨 왔다. 퇴계 이황이 유독 사랑한 것은 매화다. ‘설중매화(雪中梅花)’라, 매운 섣달 눈보라를 뚫고 봄을 알리는 기상을 사랑한 것이다(1000원권 지폐 앞면에 그 매화가 숨어 있다). 칼날처럼 뻗은 난초 잎은 선비의 기백을 표현한다. 난초는 낯을 가린다. 숨어서 꽃을 피워 은은한 향기로 존재를 알리니, 아는 사람이나 안다. 국화는 늦가을 찬 서리를 이기며 핀다. 기울고 쓰러지는 시절에도 꽃을 피워 새날을 기약하니 꼭 조선의 마지막 선비, 안중근을 떠올리게 한다. 대나무는 한겨울이 더 푸르다. 속은 텅 비어 물욕이 없고 눈바람에 외려 청청한 절개를 드러낸다.

지난달 별세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한길 평생이 떠오른다. 나는 그의 이력이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들은 어머님의 꾸지람으로부터였다고 여긴다. 아이들이 먹다가 흘린 엿 조각의 흙을 털어 달랬더니 “땅에 떨어진 엿은 주워 먹는 게 아니다”던 말씀. 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먹이를 탐하지만, 사람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먹어야 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헤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가 평생토록 ‘노나메기’ 세상,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르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고문과 유폐에도 외길을 살다 간 것은, 봄을 맞아 흐드러진 잡꽃들 말고 봄의 매화, 여름의 난초, 가을의 국화, 한겨울의 대나무와 같이 산 것이다.

일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감방으로 날아든 편지에 답신하기로 ‘평생을 정직하게 살았다’고 하였다. 권력과 재력이라는 두 떡을 움켜쥐다가 탈이 나서 감옥에 있어도 저런 소리를 하는 자는 병든 자다. 어린 나이에 가슴에 박힌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외길로 살다간 사람의 색깔과 늙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의 색은 다르다. 백기완의 것이 진달래의 붉은색이라면, 이명박의 것은 개나리의 노란색이다.

지리산 아래 은거한 조식 선생이 서울서 출세한 제자와 밥상을 같이 했던 일화가 떠오른다. 거친 밥을 제자가 삼키지 못해 목을 빼자, 선생 가로대 “자네는 밥을 등짝으로 먹질 못하는구먼!” 공직자는 밥을 입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직자의 길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욕망의 바벨탑이 해변을 채우고 사람들의 치켜뜬 눈알이 발간 오늘, 웬 흰소리인가 싶겠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산도 좋고 물조차 좋은 정자는 없다. 이번 4·7 재·보궐 선거에서는 어떤 길을 걸어온 후보자인가를 관찰하고 뽑아야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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