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권하는 사회, ‘주식 중독’에 빠진 청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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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장 모(29) 씨는 2년째 근무하던 공장 월급이 반 토막 났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일감이 줄자 동료도 하나둘 공장을 떠났다. 초조해진 장 씨가 택한 건 주식이었다. 소소한 월급보다는 주식으로 ‘한 방’을 노리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 씨가 털어 넣은 목돈 500만 원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증발했다. 결국 장 씨는 소액대출까지 손을 댔고, 1년 사이 빚은 1200만 원으로 늘었다.

주식에 목숨 거는 한탕주의 기승
코로나 이후 관련 상담 갑절 늘어
중독 현상 호소 2030세대 급증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 커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장 씨는 “코로나19로 취업 길은 물론 생계도 막막하다. 기댈 곳이 없는 지금, 주식은 내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사업을 실패한 이 모(35) 씨에게도 주식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자 이 씨는 가족 생활비를 벌기 위해 소액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다 8개월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이 씨는 거래처 물품 대금까지 주식에 밀어 넣고 있었다. 지난 2년 사이 이 씨가 진 빚은 3억 원에 달한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부인은 그에게 이혼을 통보했다.

코로나 19 사태로 경기는 바닥을 치고,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열패감에 휩싸인 20~30대를 중심으로 주식을 유일한 퇴로로 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드머니를 장만한다며 대출 등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는 청년층이 증가하면서 한탕주의가 낳은 ‘주식 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29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부산울산센터(이하 도박센터)에 따르면 올 3월 주식중독 관련 상담 건수가 2018년에 비해 배 넘게 늘었다. 상담 접수자 중 ‘주식 중독’을 호소하는 비율은 최근 3년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왔다. 2018년 3.5%이던 상담 비중이 2019년 4.1%, 2020년 5.4%로 꾸준히 늘어나다 올 3월 7.4%까지 증가했다.

특히 올해는 3월까지 벌써 18건 주식 관련 상담이 접수됐다. 2년 전 한 해 접수 건수의 절반이 넘은 수치다.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70건 이상의 주식중독 상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주식 중독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본부에 따르면 전국의 주식중독 상담 접수 건수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 2018년 875건에서 지난해 1732건으로 무려 97%가 늘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주식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연령별 중 2030세대 비중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과 울산의 경우 주식 문제로 상담을 신청한 20대는 2018년에 한 명도 없었지만, 올해 3월 전체 상담자 중 21%나 차지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 환경이 위축되고 취업 시장마저 좁아지면서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주식으로 눈 돌린 청년이 대폭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경성대학교 심리학과 이수진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기존처럼 저축으로 주택 구입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한탕주의’가 주식중독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주식 자금을 위해 대인관계 파탄, 재산 탕진 등 극단적인 행위가 뒤따를 수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측은 주식은 도박이나 마약보다 일상에서 접하기 쉬워 중독이 의심될 경우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것을 당부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부산울산센터 김정은 센터장은 “주식은 투자자 스스로 중독임을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도박 중독에 비해 좀 더 어려운 편이다”라며 “주식으로 재정 문제, 가족 간의 불화가 발생하거나, 스스로 감정조절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정서적인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다면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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