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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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분들은 북한의 공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매월 한 번씩 실시되던 민방위 훈련을 기억하실 터이다.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민방위대원들이 거리를 통제했고, 길 가던 시민들 모두 건물 안이나 지하도로 대피해야 했다.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나는 것은 민방위대원들이 불어대던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대조적으로 너무 무덤덤해서 이질감마저 들었던 시민들의 표정이다. 가끔 바쁜 일이 있는데 하필이면 훈련에 걸렸다고 투덜대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공감도 없고 반감도 없이 그저 무료해 하는 얼굴로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1983년 2월 25일 민방위본부에서 온 국민이 놀랄 방송을 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 공군 대위였던 이웅평 씨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다. 잘못된 방송도 나왔다. “국민 여러분, 지금 인천 지역에 북괴 공군이 폭격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폭격은 없었다. 이웅평 대위는 처음부터 귀순임을 알렸고 안전하게 공군 비행장에 착륙했다. 북한의 공습에 대비한답시고 온 국민을 돌려대던 정부가 정작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벌어지자 미그기 한 대에 혼비백산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하던 그 목소리다. 내가 살면서 들은 것 가운데 가장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정작 내 주변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을 가장한 또 한 번의 민방위 훈련인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과연 무슨 일이 정말 일어나기는 했는지 서로 궁금해했을 뿐이다. 하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시절의 일이다.

민방위 훈련의 무덤덤한 시민들
미그기 귀순 사건에도 아리송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만든 희귀 풍경

확진자 200명대 줄이겠다지만
대책은 아직 거리 두기와 손 씻기
4차 대유행 막기 위한 대책 필요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500명대를 오르내리다 600명을 넘어섰다. 정세균 총리가 2주 안에 일일 확진자 수를 200명 대로 낮추겠다고 국민들에게 장담한 그 2주 동안에 확진자수는 400명을 넘어 600명 대에 이른 것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조만간 확진자 수가 1000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총리도 장관도 4차 팬더믹이 우려된다며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엉뚱한 말씀을 드려서 참 죄송하다만, 요즘 코로나19 사태에 관한 정부의 발표를 듣노라면 나는 문득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하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국민들의 협조를 구한다면서 정작 국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협조하라는 것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권덕철 장관이 방송에서 한 말 가운데 “1년 전처럼”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렇다. 국민들은 이미 1년 전부터 할 수 있는 만큼 협조하고 있다. 마스크도 잘 쓰고 있고 손 소독도 열심히 하고 있다. 불필요한 외출은 자제하고 가족이나 친지들과의 모임도 미루었다. 문제는 국민들이 협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보냈는데도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면 이제는 무엇이든 다른 대책이 나와야 옳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마스크를 잘 쓰시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하시고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드리고…” 1년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치 민방위훈련 중인 지하도처럼 시간마저도 멈춰 버린 느낌이다. 물론 이웃 일본만 해도 일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고, 다른 나라를 보면 심지어 수만 명을 넘는 나라들도 있다. 그러니 우리 정부도 이만하면 무조건 비난받을 만큼 무능력하지는 않다. 특히 방역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의료진들의 노고에는 정말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하지만 4차 팬더믹이 예상되고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넘을 수도 있다면 이제 뭔가 다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1년이 넘도록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위급한 실제 상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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