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을 본 듯 숨소리까지 공유한 무용”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신은주무용단 ‘내 안의 물고기’ 리뷰

버려진 공간, 학교 체육관이 춤꾼들의 환상적인 무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23~25일 오후 6시 부산 서구 암남동 알로이시오기지 1968, 기지 #03(옛 알로이시오 중학교 체육관)에서 펼쳐진 신은주무용단의 신작 ‘내 안의 물고기’는 그랬다.

버려진 학교 체육관서 이동하며 공연
다양한 볼거리에 몰입해 2시간 ‘훌쩍’

무대는 색달랐다. 길잡이 마임이스트 방도용의 안내로 들어선 체육관은 꽤 넓었다. 어림잡아 500~600평은 돼 보였다. 대부분의 공연이 한 공간에서 한 방향을 바라본다면 이날 공연은 완전히 달랐다. 그야말로 공간의 해체였다. 최소 다섯 번의 공간 이동이 있었지만, 관객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즐기는 듯했다. “이번엔 과연 어떤 춤판이 펼쳐질까?”

무용수들은 단상이 있는 격식 갖춘 공간만이 최고의 무대가 아님을 몸짓으로 증명해 보였다. 관객은 코앞에서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몸짓,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고, 무용수들은 관객들의 내밀한 반응까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관객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분명 무용 공연이었는데, 마치 마당극 한 편을 본 것 같았다”고. 또 다른 관객은 “이런 공간에서 춤을, 그것도 무용수와 같은 눈높이로 본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고 말했다. 멀리 전남 목포에서 온 김혜미 씨는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무대에서 여러 가지 연출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색달랐다”고 말했다.

공연 몰입도도 좋았다. 내 안의 물고기는 2019년 6월부터 일본, 대만, 헝가리, 폴란드 등을 리서치했다. 작년에는 리서치 아카이브전도 열었다. 준비부터 공연까지 거의 2년이 걸린 셈이다. 무용수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몸짓에, 춤 동영상과 때때로 강렬한 비트의 신나는 음악까지 더 해 관객의 눈과 귀를 붙잡아 버렸다. 봄 향기 흩날리는 계절, 다양한 형태의 볼거리를 갖춘 춤판에 2시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내 안의 물고기는 물, 불, 공기, 흙 4원소를 통해 우리가 상실한 몸의 변화와 감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겉으로 보기엔 다분히 진화론적인 듯하지만, 지극히 철학적이다. 여기서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바탕. 불은 얼핏 다툼 같지만, 타오름 그 속엔 사랑이 내재해 있다. 공기는 영혼이며 생명으로 해석된다. 흙은 대지다. 땅의 여신 가이아에서 알 수 있듯이 태초의 어머니이다. 4원소를 통한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철학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게 몸으로 비교적 잘 표현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초반 물고기의 등장은 인간의 몸에 내재한 진화의 흔적으로 이해된다. 신은주 안무가는 “내 안에 남아있는 물고기를 꺼내놓는 작업은 나와 너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했다. 그렇다면 물고기와 4원소는 어떻게 연결되고 해석될까. 짧은 상상만으로는 해석이 조금 힘들다. 또 진화 과정을 버려진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작업과 연결 짓기도 쉽지 않다.

내 안의 물고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신은주 안무가는 “내년엔 좀 더 완성도 높은 내 안의 물고기로 관객을 찾겠다”고 했다. 그때는 또 어떻게 관객에게 다가올까. 기다려진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