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한마디에 미국 - 터키 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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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워싱턴 주재 터키 대사관 앞에서 펼쳐진 아르메니아계 이민자들 시위에 동참한 한 어린이가 터키의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 인정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일인 24일(현지시간) 터키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공식 인정했다. 미국 대통령이 이날 성명에서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이후 41년 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한다”며 “미국 국민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모든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있다”고 밝혔다.

오스만제국 아르메니아인 학살
바이든, ‘집단학살’로 공식 규정
오스만 계승한 터키 ‘부글부글’
미국 대사 초치 등 강력 반발
‘공군기지 차단’ 확전 가능성도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오스만제국 내 아르메니아인이 학살과 추방 등으로 인해 대규모로 목숨을 잃은 일을 말한다. 1915년~1923년 학살 등으로 사망한 아르메니아인은 1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23년 오스만제국 몰락 후 탄생한 터키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위한 조직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성명을 두고 CNN 등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을 향한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한편 글로벌 인권 책무를 중시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 “국제관계에서 인권의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에 반해 터키는 미국이 이 논란을 정치화하려 한다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력 반발했다. 터키 외무부는 이날 비판 성명에 이어 자국에 주재하는 데이비드 새터필드 미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터키와 긴장이 고조되면서 오는 26∼27일 터키에 있는 외교공관들의 일상적 업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외신들은 미 행정부가 성명으로 인해 터키와 관계가 나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과 터키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과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지만 터키가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 도입을 강행하자 미국은 터키의 미국산 F-35 전투기 구매를 막았다. 또 미국의 적대 세력에 대한 제재를 통한 대응법(CAATSA)에 따라 터키 방위산업청에 대한 수출 허가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집단 학살을 언급한 성명을 내놓자 터키가 자국 내 미 공군기지 사용을 문제 삼거나, 미국 상품에 대한 비공식적인 비관세 장벽을 만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터키를 러시아의 궤도로 더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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