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경찰, 국민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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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생때같은 자식이 멀쩡히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부모 품에 돌아왔다. 지난달 25일 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돼 5일 만에 차가운 강물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손정민 씨 사건에 국민적인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추모 물결이 이어진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가뜩이나 뜨거운 관심이 전국으로 확산하자 부담감이 매우 클 테다. 따라서 신속하고 명확하게 사인을 가리기 위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 싶다.

그런데도 손 씨의 아버지는 철저한 경찰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검찰에 냈다. 어떤 이는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려 40여만 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수사가 미진하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일반인들의 집회도 열렸다. 이 와중에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억측이 난무한다. 실종 전날 손 씨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는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가해자로 지목돼 온라인 신상 정보까지 털리고 있다.

국민들의 불신 매우 오래되고 깊어
공무원 범죄 가운데 경찰 절반 차지

청렴도 평가서 매년 하위권 맴돌아
국민의식 수준과 기대치에 못 미쳐

수사권 강화되고 자치경찰제 앞둬
책임감 있고 믿음직하게 거듭나야


왜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 20일이 훨씬 지났지만, 유가족과 국민이 보기에 수사가 별다른 진척 없이 더디다는 느낌을 받아서일 게다. 인터넷에 떠도는 다양한 추측 중엔 수사 진행에 관한 불만과 경찰을 미덥지 않게 여기는 글이 많다. 심지어 근거 없는 경찰 연루설이 나돈다. 수사진 등 경찰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오는 7월 지방분권을 위한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둔 경찰 위상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경찰이 하루빨리 의문의 죽음에 대한 실체를 밝혀 불신을 해소하기 바란다.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공권력을 오·남용한 때가 많은가 하면 부자나 강자 편을 든 적이 수두룩하다. 낮은 윤리 의식과 해이한 공직 기강을 여실히 보여 준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한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9년 경찰 간부들과 유흥업소 간 유착 관계가 드러난 ‘버닝썬’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이 권력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초래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도 있다. 여느 공무원보다 더 엄격하게 법을 지키고 청렴해야 할 경찰이 그렇지 않은 모습을 자주 노출해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2018년 42개 정부 부처 가운데 공무원의 범법 행위가 가장 많았던 기관이 경찰청인 건 충격적이다. 이는 경찰청이 2019년 국회에 제출한 국감 자료 ‘공무원 범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 3356명의 절반에 가까운 1640명이 경찰관인 점은 예사로 생각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극히 일부 구성원의 비위로 경찰 전체 명예가 실추돼 억울하다”는 평소 경찰 측 하소연이 무색할 지경이다.

민주화가 진전된 데 힘입어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인식되는 시대다. 국민의식 수준이 제고되면서 경찰에 기대하는 국민 눈높이 역시 높아졌다. 이제 사람들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사안에 제대로 개입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업무 처리 지연과 불공정한 태도조차 부패 행위로 간주할 정도다. 경찰청은 최근 4년간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 결과, 매년 5개 등급의 하위권인 3~4등급에 머물며 국민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깝다.

올 초 경찰은 큰 변화를 겪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수사종결권을 가졌다. 엄청난 권한이 생긴 만큼 책임이 커진 셈이다. 경찰이 계속 청렴성이 떨어지는 부패한 조직 취급을 받거나 강한 불신을 사선 정말 곤란하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서기 힘들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자세가 요구된다. 내부적으로 부패를 근절하는 한편 다방면으로 전문성과 공정·중립성을 확보해 대국민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수사 역량과 경찰관 자질을 향상해 공정하고 오류가 없는 수사가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 인권을 침해하거나 부당한 경우도 없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7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자치경찰제가 도입된다. 국민의 믿음과 지지가 바탕이 돼야만 안착 가능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이 민생 안정과 지역 실정에 맞는 고품질의 치안 서비스 제공에 적극 노력할 시점이다.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새로운 경찰상을 구축하길 원한다. 성공적인 자치경찰 운영이 지방자치 발전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경찰청이 청렴문화 확립을 위해 감찰·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내부 교육 활성화를 추진해 고무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면 좋겠다. 하지만 국민 신뢰를 얻을 목적으로 지역 경찰청·경찰서마다 구성에 나선 시민청문관과 시민참여형 청렴협의체는 7급 담당자와 민간위원의 역할에 한계가 많아 전시성만 짙은 행정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본연의 임무를 묵묵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경찰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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